차사 염화인 16

by 아무



“그때가 벌써 30년 전인가.”

시선을 들어 허공을 응시하는 독안.

이윽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옛일을 회상했다.

*

“수석님.”

“여어.”

잠행부 황조의 평차사 문도형을 향해 독안이 여유롭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정찰 중에 수상한 고혼을 발견했다는 도형의 호출을 받고 온 것이다.

“저길 좀 보십시오.”

도형은 곧장 제가 발견한 수상한 고혼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대문 옆에 대나무를 장식한 허름한 신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젊은 무당이 신단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여기까지는 여느 무속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젊은 무당이 모시는 신이, 신이 아니라 어린 고혼이라는 점이었다.

심지어 달아나지 못하도록 속박으로 묶여 버린 고혼이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독안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탈자 중 하나가 아닐까요?”

저승사자의 부름을 거부하고 중음을 떠도는 고혼의 다른 이름, 이탈자.

“역시 그래 보이지?”

독안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었다.

“일단 더 지켜보자고.”

독안이 도형의 어깨를 툭툭치고 돌아설 때였다.

“음?”

순간 독안은 제 눈을 의심했다.

어린 고혼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보통내기가 아니군.’

어린 고혼은 기척을 숨기기 위해 거리를 두고 정찰 중인 차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챘다.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네.”

“네??”

당황한 도형을 뒤로하고 독안이 고혼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런데 가만 보니 비쩍 말라 해쓱한 몰골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날카롭게 번뜩이는 줄 알았던 고혼의 눈빛도 불안과 공포가 서려 있을 뿐이다.

조금 더 다가가자 어린 고혼은 숨길 곳 없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두 무릎에 얼굴을 숨겼다.

독안은 어느새 신당 안으로 들어가 무당 앞에 섰다.

그제야 독안을 발견한 무당.

“아이고, 깜짝이야.”

무당이 앉은 채로 뒤로 넘어갔다.

아무리 독안이 기척을 숨기고 다가갔기로서니 눈앞에 이르러서야 알아채다니.

-형편없는 무당이로세.

독안이 도형만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귀문은 열렸으나 영안이 흐리구나. 한데 저런 자가가 어찌 어린 고혼을 잡아 뒀을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황급히 뒤따라온 도형이 맞장구를 치고 제가 할 일을 알아서 고했다.

-우선 저는 고혼의 명부부터 찾아오겠습니다.

독안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승낙한 뒤, 무당에게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조상신의 미움을 산 모양이군.”

“미움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당은 독안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기쁘게 대답했다. 이제껏 보아온 어떤 조상신보다 강한 영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대 주위에 조상신이라 할만한 영이 없지 않나.”

독안이 어린 고혼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무당도 따라서 눈알을 굴리더니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표독해 보였다.

때마침 고개를 살짝 들고 독안을 바라보던 어린 고혼.

어린 고혼은 독안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다시 얼굴을 숨겼다.

“이 아이를 거둔 뒤로 그리 되었습니다.”

무당이 독안을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새로운 신을 모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숨기고서.

“불쌍하게도 중음을 혼자 떠돌고 있기에 거두어 주었더니, 글쎄.”

무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고얀 것이 먼저 자리 잡은 조상님을 쫓아내 버리지 뭡니까. 하여 이후로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조상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참으로 곤란했는데, 하늘이 도왔습니다.”

무당은 마치 연극배우처럼 두 팔을 벌리고 천장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가증스러운 미소가 활짝 피었다.

“저 어린것에게 신통한 재주를 내려주셨지요.”

독안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재주가 무엇이냐.”

“과거를 보는 재주입니다.”

“으음.”

독안이 턱을 쓸며 목을 울렸다.

조상신 중에서도 젯밥을 잘 먹고 기도를 잘 받은 영이라면 상급 차사들 못지않게 영력이 잘 발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거라면 그리 신통한 재주가 아닐 텐데.”

무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아이는 그냥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제게 보여 줍니다.”

“보여 준다?”

되묻는 독안의 관심이 달가워 무당은 흥에 겨워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제 머릿속에, 눈앞에, 손님의 과거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독안이 어린 고혼을 흘끔 보았다. 여전히 방구석에 잔뜩 웅크린 채였다.

“과거만 알면 미래는 눈에 선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독안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무당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해서 그 자리에 다른 신은 모셔오지 않고 어린 고혼을 붙잡아 점쟁이 노릇이나 하면서 먹고살고 있다, 이 말인가.”

독안이 심드렁한 얼굴로 허름한 신당 안을 둘러보았다.

“한데, 점사가 영 엉터리인 모양이구먼. 신당이 이리 허름한 걸 보니.”

독안이 무당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당의 고개가 따라서 내려왔다.

“그 신통한 재주를 제대로 받아먹었다면 대문 앞에 장사진이 쳐 있었을 텐데 말이지.”

탁자 위에 팔을 얹고 턱을 괴는 독안.

그때, 명부를 찾으러 간 도형이 돌아왔다.

“찾았습니다.”

“어디 보자.”

독안은 도형이 건넨 적배지를 확인하고 어린 고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진년 십일월 사일 정서도.”

독안의 음성이 신당을 터뜨릴 듯 울렸다.

이어 독안에게 호명된 어린 고혼의 영체가 희미한 빛을 발했다.

그 순간 독안의 영기에 짓눌린 무당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리석은 무당은 그제야 눈앞의 영현이 저승사자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이고, 사자님.”

무당이 벌벌 떨며 넙죽 엎드렸다. 독안의 기에 압도된 탓이다.

“속박을 풀어라.”

독안의 음성이 무당을 내리찍었다.

독안은 처음부터 무당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린 고혼의 후줄근한 행색과 모진 속박이 무당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했다.

“그, 그게, 못 풉니다.”

독안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무엇 때문인가.”

“제가 건 속박이 아닙니다.”

“뭐어?”

옆에서 지켜보던 도형의 얼굴도 사납게 변했다.

“그럼 그대와 저 아이 사이에 속박을 건 자가 누구인가.”

무당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입술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겐가.”

“아, 아닙니다. 사자님.”

“어서 고하는 게 좋을 겁니다.”

도형이 날 선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게, 제 조상님입니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무당이 결국 입을 열었다.

“네 조상신이 이런 짓을 하였다는 말이냐.”

무당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긍정의 뜻이었다.

“어디 갔느냐. 네 조상신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독안이 그새 거짓을 입에 담는 무당의 말을 잘랐다.

“쫓겨나는 조상신이 어찌 속박을 건단 말이냐.”

“모, 모릅니다.”

무당이 울먹이며 답했다.

“하아.”

독안이 그녀의 한심한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부족한 무당이 어찌 속박을 걸었나 했더니.’

-속박은 결자해지다. 어서 찾아야 한다.

-예, 중음을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도형이 곧장 독안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독안은 허름한 신당에 장막을 드리웠다.

*

어린 고혼 서도는 독안이 무서웠다.

키도 크고, 덩치고 크고, 목소리도 컸기 때문이다.

또 독안이 무당에게 말할 때면 온몸이 찌릿찌릿 저려왔다.

그것이 서도를 더욱 공포에 빠뜨렸다. 목소리만으로도 저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으니.

“자, 어서 먹거라.”

그런데 그날 이후 매일 찾아와 먹을 것을 주는 독안의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찌릿찌릿 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서도는 독안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언제 돌변하여 저를 아프게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무당이 그랬다. 기분이 좋으면 먹을 것을 주고, 아니면 부적으로 저를 괴롭히고 성을 냈다.

저들도 그럴 테지.

“수석님!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도형이 독안을 나무랐다. 상급자에게 참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도형은 놓치지 않았다.

“웃으면서 말씀해 보십시오.”

“거참.”

독안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시 말했다.

“이것 좀 먹어 보려무나.”

씨익.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 독안.

서도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렇게 커다란 덩치를 활짝 펴고 있으면 저라도 무섭습니다.”

도형이 억지로 독안을 쪼그려 앉혔다.

“이거 저승에서 엄청 유명한 과자야. 여기 독안 수석님이 특별히 너를 위해 사 왔단다.”

도형이 너스레를 떨며 서도에게 과자를 하나 건넸다.

서도는 둘을 번갈아 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도 좀처럼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거 먹어도 나 아프게 안 할 거야?”

서도가 처음으로 입을 연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기가 막혀 독안과 도형은 말문이 막혔다.

독안과 도형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럼, 당연하지.”

도형이 애써 웃으며 먼저 답했다.

“이제 아플 일 없다. 어서 받아라.”

그럼에도 서도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야 겨우 과자를 받아 들었다.

그의 앙상한 팔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화, 금 연재
이전 15화차사 염화인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