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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Oct 07. 2022

두 번째 아바타

아바타 리마스터링 4dx를 보다

*영화 아바타의 내용이 포함돼있는 글입니다.


2009년 12월, 나는 만삭이었다. 영화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인기있는 영화는 챙겨보는 편이다. 당시 아바타는 한국 개봉 전부터, 이미 전세계적으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을 때여서 이건 꼭 보고 애를 낳겠다고 쓸데없이 비장하게 다짐했다. 다행히 600석이 넘는 아이맥스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애 낳고 나면 당분간 영화 보기는 어려울테니 이건 꼭 봐야겠다고 예약은 했는데 걱정도 많았다. 세 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에 화장실은 가고 싶지 않을지, 당시 아이맥스 좋은 자리를 구했는데 가운뎃자리라 혹시 화장실 가려다 민폐를 끼치진 않을지, 임산부는 긴장하면 자궁수축이 올 때가 있는데 놀랄 장면이 많은지. 뭐 이런저런 고민을 좀 했지만, 임신한 거 안 날 너무 신나서 놀이공원 가서 범퍼카를 탄 천방지축 무지렁이 임산부였던 나는 결국 극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철딱서니하고는.


2014년 기사 중 가장 과대평가된 영화 1위가 아바타라는 기사도 있던데 뭐 이거야 개인의 취향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고. 13년 만에 다시 보는 내겐 여전히 수작이었다. 아니, 다시 보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아바타를 타이타닉 감독작품이라고 소개한 문구가 참 귀엽다.

일단 13년 전 영화의 제작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이 여전히 살아있는 주제라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씁쓸하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라는게 참 여전히 오만하지. 사실 개인적으로 당시에는 환경 문제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었는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상황은 훨씬 악화됐다. 코로나19의 등장, 기후위기 등으로 위기가 턱끝까지 닥쳤다고 하면서도, 치킨게임처럼 누가 먼저 포기하기 전까지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이전투구만 하고 있는 실제 지구인들의 모습이 겹쳐 조금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완전한 몸, 아바타를 만나게 된 제이크가 느꼈을 희열도 더 진하게 느껴졌고(이건 아마도 건강이 소중해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어서인가), 종족으로 보자면 인간 편을 들어야하는데 외계인을 응원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그 사이 기술의 발전도 대단하다. 아이가 4dx를 경험해보고 싶대서 처음으로 이용해봤는데 제법 그럴듯했다. 물 속에서, 땅위에서 바퀴가, 하늘 위에서 움직이는 것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세 시간 동안 더 긴장감 있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좀 멀미하는 느낌이긴 했지만. 돈 될만한 걸 찾느라 중요한 걸 없애려는 영화 속 캐릭터에 분노하면서, 기술에 감탄하고 있자니 나란 사람은 정말 될대로되라군 하는 생각도 들었고.


두 번째 관람에서는 굵직한 인물들 보느라 보지 못했던 첫 관람과 달리 트루디 같은 강인하고 의리있는 조연 캐릭터도 눈에 들어온다. 13년이라는 시간이 세상 뿐 아니라 나에게도 많은 변화를 주었음을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니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제이크가 아바타와 링크하는 부분이 어려울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처음엔 좀 헷갈렸지만, 보다보니 알게 됐다고. 뱃속에서 한번, 4dx 의자에서 한번 본 n차 관람자 큰애에게 어떤 영화인 것 같더냐고 물었더니 "하잘것 없는 인간들이 대자연에게 까불다가 새가 되어버린 내용"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그럭저럭 이해는 한 것 같다. 언젠가 나온다는 후속작 격인 '아바타:물의 길'도 보러가자고.


오랜만에 보니 인상적이었던 몇 장면 말고는 잊고 있었던 게 많았다. 이런 얘길했더니 둘째가 엄마 뇌가 새거라서 그렇단다. 응? 뇌세포들이 조금씩 죽고 생기고 하는데 완전히 교체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7년이라나. 두 번이나 새 뇌가 됐으니 기억 못할만도 하구나. 어쨌건 좋은 영화는 역시 n차 관람이다. 뇌는 변해도, 좋은 영화는 변하지 않는구나.


(사진. 아바타 스틸컷 및 공식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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