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으로 글쓰는 일을 그만둔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가끔 예전 생각이 날 때가 있는데, 나같은 애가 어떻게 글로 밥을 먹고 살았지 싶다. 나는 참 글을 못 썼는데.
내가 글쓰기가 무서워진 건 4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이 낸 독후감 두 개를 읽어주면서 둘 중에 뭐가 더 별론지 골라보라고 하셨다. 압도적으로 한 글이 별로인 글로 뽑혔는데 내 글이었다. 만 10세 인생에 가장 큰 충격이었던 기억이다.
참으로 나를 막막하게 했던 빈 원고지. 픽사베이
나는 순하고 말 잘듣는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제법 잘해서 크게 혼날일 없이 살았다. 게다가 그 선생님은 내가 생각해도 유별날 정도로 나를 예뻐하셨던 분이다. 그 해에 학교 시상식에서 내 이름이 빠진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닥 잘 한다 볼 수 없었던 미술 음악까지 상을 휩쓸었다.
선생님은 모르셨을까? "왜 이 글이 못 쓴 것처럼 느껴질까?"라고 아이들에게 물으셨던 걸 보면, 선생님은 분명히 그 글이 못쓴 글로 뽑힐 걸 알고 계셨다. 나를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분이 왜 그러셨을까?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던 것 같긴 하다.
그 독후감이 못쓴 글이었던 건 독후감상문이 아니라 줄거리 요약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책 좀 보는 애였던 나는 조금 어려운 어휘들을 나열한 요약본을 독후감이라고 냈고, 아마도 선생님은 독후감이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한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 일은 효과가 크긴 했는데 당시에 알아듣기는 좀 어려운 가르침이었다.편애에 가까운 애정을 쏟던 분에게 가차없는 평가를 들었다는 사실이 트라우마로 남아 나는 글쓰기가 무서워졌고, 아주 오랫동안 나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고,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글만 쓰려면 긴장이 됐고, 늘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논술을 준비하면서 보니 나같이 충격적인 기억이 없는데도 글쓰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됐던 것 같다.
그렇게 글쓰기를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글쓰기는 당연히 가장 큰 벽이었다. 언론사 시험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는 역량이니까.
시험 준비를 하면서 알게됐다. 글은 쓰면 는다. 보통 언론사 입사 준비생들은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데 한 일년쯤 글쓰기를 주구장창해대면 어느 순간 내 글이 언론사 입사시험의 관문을 넘어서는 날이 온다. 나같은 게 글로 합격이란 글자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어느 즈음에 나는 드디어 필기 시험에 통과했다. 이 때의 기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는데 그때 내가 쓴 글이 내가 생각해도 제법 잘 쓴 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도 잘쓴 글은 남이 보기에도 좋구나 하는 쾌감을 처음으로 맛봤다.
언론사 입사 준비와 회사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고, 그 중 하나가 글은 계속 쓰면 는다는 확신이다. 가끔 아이들의 글쓰기를 고민하는 아이 친구 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글은 쓰면 는다. 그러니 글쓰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고 권한다. 대신 아이들 글에 절대 평가하지 말기를 권한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말을 많이 한다. 그를 그대로 옮기면 정말 훌륭한 글이 되곤 하는데 평가를 듣고, 형식에 맞추라는 말을 듣고, 글이 말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 신선함과 반짝임이 없어지는 경우가 아주 많다. 편안하게 글을 쓰게 되고 난 후에 형식을 배우고 평가를 들어도 전혀 늦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글은 쓰면 느는 한편 안 쓰면 실력이 떨어진다. 어쩌면 내 글쓰기의 정점은 수 천자짜리 기사를 쓸 때보다, 더 좋은 글을 쓰려고 머리를 싸맸던 입사 준비 시절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간절함과 절박함은 내가 다시 찾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이긴 해도 선생님 말씀은 너무나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우리 때는 아직 '글짓기'라는 말을 쓸 때였는데 선생님은 우리에게 "글을 억지로 짓지 말고 솔직담백히 써라. 글쓰기를 해라"라고 말씀하셨더랬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글쓰기의 무서움을 밀어내고, 이 말을 여러번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잠깐의 아픔을 주신 분이지만, 어쩌면 글을 못 쓰는 내가 글로 십년 넘게 밥먹고 살게 해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때면, 그 분이 나를 진심으로 아끼셨던 게 맞다는 생각도 한편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