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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Nov 14. 2020

글 쓰고 싶은데

글감이 없다

브런치에 글을 안 올린 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브런치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브런치는 언제나 내 내면 한구석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굣길 혹은 퇴근길에 휴대폰으로 썼던 글을 떠올리면서 사람으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브런치 앱에 괜히 들락날락해본 적 있다. 집에 와서도 괜히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의 빈 화면을 지긋이 바라봤다. 하지만 쓸 말이 없었다. 어느 날에는 할 말이 너무 많아 이런저런 말을 장황하게 내뱉어 본 적도 있다. 이런 내면이라면 들키고 싶지 않아서 서랍에 고이 모셔놨다.


브런치는 나에게 고마운 존재다. 나는 글을 일종의 배설의 결과로만 여겨왔던 듯하다. 십 대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내가 글을 언제 썼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힘겨운 일을 겪고 난 직후에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일시적인 사건이든 장기적인 문제든, 힘겨운 일과 싸우고 몰아치듯 글을 쓰곤 했다. 글을 쓰면 벅찬 마음이 비로소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브런치는 오픈된 공간이고 사람들이 들어와서 보니까 신경을 써야 했다. 내가 프로 작가는 아니니 아주 대단한 글을 쓸 필요는 없었지만, 배설을 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이 들어와서 시간을 써도 아주 아깝지는 않아야 했다. 소재와 내용에 아주 많이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공을 들였고, 그 결과 브런치는 내가 꾸준히 정제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준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공간에는 애정이 있다.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이 공간을 유지하면서 아끼게 된 내 글 쓰는 자아도 계속되고 있음을 나 자신에게 확인받고 싶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요새 들어서 이상하게 글 쓰는 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나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 '글쓰기 자아'가 소멸될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책 읽는 데도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무슨 말을 읽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아 돌아가서 읽거나, 오늘은 책 읽기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며 휴대폰을 집어 드는 때가 잦아졌다), 통과되지 않더라도 아이템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궁금증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이런 나 자신에게 조급함을 느끼게 되었다. 삶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난 애석했다.


나의 마음에 대단한 변화가 있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친구가 독서회를 만들어서 가입하게 되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거기서 내가 제안한 책을 읽기로 결정이 났다. (사실 확실한 건지 모르겠다.) 오늘 오전에 일어나서 책을 읽는데 잘 읽히고 놓기 싫었다. 두 시간 반 정도를 다른 짓을 약간씩 병행해가며 내리 책을 읽었다. 주말이랍시고 열한 시간을 자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고 드라마나 유튜브가 아니라 책에 시간을 썼음도 기뻤다. 왠지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브런치에 들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할 말이 없었다. 들키기 싫은 내 모습을 몇 문장 쓰다가 다 지웠다. 그리고 내 '할 말 없음' 상태에 대해서라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할 말 없음'에 대해서라도 이런저런 말을 쓴 지금은 자신감을 조금 얻었다. 어쩌면 내 글쓰기 자아가 약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날 둘러싼 세상이 내 기준에 좀 지루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너무 글쓰기 자아 소멸과 할 말 없음에 얽매인 나머지 다른 주제로 고개를 돌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이어질 날들은 좀 더 궁금증과 관찰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사진도 넣고 재미있는(혹은, 재미가 좀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는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싶다. 그런 날까지 내 안에 있는 고루함과, 대신에 평화롭게 흘러가는 내 바깥의 일상에 푹 젖어 지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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