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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Jun 23. 2021

발치 후기

지혜의 이(love teeth) 뽑았다.

전쟁의 서막을 알리던, 어제(0622)의 학교 도서관 뷰. 내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다.

시작은 작년 이맘때였다. 그날도 앞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그렇게 심하던 때가 아니라 두 개의 대면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안 그래도 골치가 아팠는데, 왼쪽 아래 잇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혀로 만져보니 부어오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안쪽 이만 아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금니 전체, 심지어는 위쪽 어금니에서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참지 못하고 치과에 갔다. 별 건 아니고 사랑니예요, 피곤하면 부을 수 있고 앞으로도 컨디션 안 좋을 때마다 그럴 거예요. 인간이 필요도 없는 치아 네 개를 더 달고 있는 게 사실 가장 큰 문제겠지만, 마침 대면 시험 두 개를 포함해 총 여섯 개의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 데다가 그런 대학생의 사정 따위 고려해 주지 않는 대외활동, 2.5개의 아르바이트, 그리고 학교 탈출을 위한 인턴 지원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던 게 쓸모없는 이를 덮은 잇몸을 자극한 듯했다. 골치 아팠다. 이 뽑는 데는 돈도 시간도 들었고, 무엇보다 시험을 앞두고 이 뽑힌 자리 때문에 나뒹굴고 싶지 않았다. 방학이 되면 다시 오겠다고 정중히 말한 뒤 약만 타 왔다. 약을 먹으니까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왼쪽 사랑니를 잊었다.

그 뒤로 왼쪽 아래 사랑니는 방송국에 들어가 늦게까지 일을 하자 다시금 난리를 쳤다. 그때는 코로나와 수차례의 술 약속 등등으로 발치가 미뤄졌고, 그럼에도 사랑니 따위 생각도 안 나게 잘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복학 후 다시 다가온 기말고사 기간, 이번에는 견딜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성적이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피곤한데 잇몸까지 욱신거렸다. 시험 몇 개가 끝난 기념으로 맥주 한 캔을 마셨더니 신경이 화난 자리가 맥박을 따라 욱신거렸다. 덜 가신 피로와 소량의 알코올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알딸딸한 정신으로 급히 구강안면외과를 검색했다. (전에 사랑니를 뿌리 뽑기 위해 아무 치과나 찾았다가 이가 신경에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이 그 근거다.) 전에 세 번이나 예약을 취소한 전적이 있는 병원이 있어서 그 병원 말고 다른 병원의 예약 창을 클릭했다.. 다른 병원이 더 가깝기도 했다. 먼저 이를 뽑은 사람이 그랬듯, '집에 가는 길에 데굴거릴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예약 창에 접속했는데 당일 발치는 안 한단다. 그렇다면 가장 빠른 날짜로 잡고 진통제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요일 오후 두 시에 예약을 잡았다.

치과 가는 길. 속도 모르고 날씨가 참 좋다.

대망의 수요일. 아침에 스터디를 하다가 졸았고, 오늘은 치과도 가겠다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치과까지는 버스를 타면 20분 조금 넘는 시간만에 바로 갈 수 있었다. 학교 라운지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상기된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오늘 이를 뽑는 건 아니야, 진정해.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칠까 봐 급히 씨네마운틴 봄날은 간다 편을 틀었다.(송은이가 '봄날은 간다'의 김윤아 창법이 고모 창법이라고 하는 걸 듣고 자존심 상하게 웃어버렸다.) 들어선 치과에는 대기할 겨를도 없이 사람이 없었다. 아, 망했다. 다행히 잠깐 생긴 짬에는 친구 꼬냑이가 소개한 책,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었다. 서문에 스포일러가 있는 것 같아서 찜찜하긴 했다만.

약 세 번째 찍는 엑스레이. 촬영이 시작되자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연주 버전이 머리 위를 스쳤다. 소리가 정수리를 지나니까 소름이 돋았다. 나 떨긴 떨었나 보다. 의사 선생님이 내 사진을 잠시 보더니 치과의자를 기울였다. 끝없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말했다. 이는, 뽑는 게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 파노라마로 보면 신경이랑 이가 가까워 보여요. 이건 CT를 찍어봐야 얼마나 신경이랑 가까운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오른쪽 윗 어금니 깨진 거 알고 있죠? 빨리 치료받으세요. 안 그러면 다른 이까지 갈라지니까요.

오른쪽 어금니가 깨진 건 알고 있었다. 앞서 방문한 치과에서도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그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삼십만 원이 넘는 돈이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색이 되어 치과를 빠져나온 뒤부터 잊고 지내 왔었다. 이전 치과의 냉정한 위생사 선생님의 표정과 그의 입에서 나오던 '삼십X만원'이라는 발음을 떠올리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그냥 오늘 하시죠?' 당연히 깨진 이 치료를 말하는 줄 알고-사랑니는 당일 발치 안 된댔으니까-어버버 거리다가 슬며시 물었다. '그럼 비용은요?' 선생님은 태연한 말투로 말했다. '보험처리 다 될 거예요.' 사랑니 이야기였다.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부은 잇몸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는데 지긋지긋한 치통을 겪는 기간을 늘리느니 미리 뽑아버려야겠다 싶었다. 그럼 오늘 뽑겠어요. 답하자, 위생사 선생님이 나를 다시 촬영실로 데리고 갔다. CT는 일반 엑스레이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소름 끼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좀 더 오랜 시간 들었다. 다 찍고 돌아와서 마취를 했다. 잇몸이 부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취하는 과정이 아팠다. 미묘한 바나나 맛이 나는 약물이 묻은 도구를 내 잇몸 군데군데 문질렀는데, 당연히 혀와 입볼에도 묻었다. 약이 스친 자리가 뻑뻑하게 굳어서 마치 내가 되다 만 망부석이 된 기분이었다. 혀는 감각이 없는데 입천장만 감각이 살아 있으니까 거칠거칠한 느낌이 께름칙했다. 위생사 선생님이 두 가지를 물었다. 지혈제를 넣겠느냐, 그리고 이 뽑기 전 대기 시간 동안 1년에 한 번 보험처리가 되는 스케일링을 하겠느냐. 치과에 왔을 때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다신 오고 싶지 않아서 다 해달라고 했다. 스케일링을 기다리면서 언니에게 카톡을 보내려고 휴대폰을 들었는데 힘이 없었다. 내게 마취에 대해 설명하러 와 주신 위생사 선생님이 물었다. '혹시 떨리세요?' 아뇨. 저는 안 떨립니다. 손이 떨려요. 선생님은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전해주면서 술 담배 그림 위에 동그라미와 별을 그리면서 한동안 술 담배를 삼가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셨다.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알코올과 니코틴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마치 내가 약 20분 전에 당장 오늘 이를 뽑자는 이야기에 몇 차례의 모임을 떠올렸듯.)

마취를 했음에도 삐그덕거리던 스케일링이 끝나고 잠시 또 가만히 이 엑스레이를 바라보면서 기념사진을 찍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이 엑스레이 매력적이잖아 vs 나도 어쩔 수 없는 엠제트인가) 위생사 선생님이 다시 오셨다. '원장님이 덜 아프려면 엉덩이 주사를 맞으라 하시는데, 엉덩이 주사 맞으면 확실히 효과가 더 좋거든요'. 효과가 좋다는 말에 후달거리는 몸을 이끌고 위생사 선생님을 따라가 민망한 자세와 과정으로 주사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그런 경험을 했던 게 언제인가, 여섯 살, 아니면 일곱 살... 모르겠는데...

다시금 무한히 내려가는 중력 의자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사랑니에 대한 각종 도시괴담은 잘 들어봤죠? 그게 본인 일은 아닐 것 같죠?' 음.. 어쩌란 말인가. '글쎄요'라고 답하자 선생님이 말했다. '본인 일은 아닐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해요. 마취는 잘 된 것 같아요?'. '됐겠죠?'  

그래, 엉덩 주사를 마지막으로 맞던 7살 무렵을 떠올려보자. 그 시절의 나는 마취 안 하고 다래끼도 잘 쨌어. 선생님이 어른들도 힘들어하는데 어린아이가 참 잘 참는다고 매해 칭찬도 해주셨다고. (난 유년기에 약 5-6년간 매해 다래끼를 달고 살았다.) 사랑니, 할 수 있어. 그리고 다짐 덕이든 아니든 이를 뽑는 일은 별 게 아니었다.(아니면 다래끼 마스터의 짬이 어디 가지 않은 건지...) 중간에 이가 시리면 손을 들라하셨는데 정말 이가 시려서 손을 들었고, 그러자 추가 마취를 해주셨다. 이 뿌리 하나가 잘 안 나온다면서 애써 유쾌한 웃음을 지으시던 의사 선생님은 내 잇몸을 몇 차례 헤집더니 금방 치료를 끝내 주셨다. 나는 거즈를 물고 선생님 말씀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취가 덜 풀려 굳어버린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선생님들께 거듭 고개를 숙였다.

처방받은 약을 받으러 가는데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청량리에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했다. 어차피 버스  정류장마다 지붕이 있을 테니 괜찮겠지 싶었다. 버스에서 갓 내려서 갈아 탈 버스가 언제 오나 보고 있는데 내가 의자를 막고 있었는지 할머니 한 분이 내 몸을 두 손가락으로 밀치셨다. 그래, 할머니께는 굳어버린 내 입술과 혓바닥과 잇몸이 보이지 않으시겠지, 후달거리는 내 신경계도. 웃기로 했다. 집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더 세차게 왔다. 난 불운한 로드무비 주인공처럼 터덜터덜 집으로 갔다. 도착해서 영화 한 편 틀어놓고 누웠는데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시작됐다. 손톱만 긴 미생물이 잇몸 아래에서 꿰맨 부분을 찢고 있는 것 같았다. 처방받은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이 어떤 사람의 생니를 펜치로 뽑아버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게 얼마나 끔찍한 장면인지 새삼 실감났다. 안 그래도 말이 많던 영화(가장 따뜻한 블루)를 보고 있던 중이긴 했지만 도무지 집중이 안 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xnku4o3tRB4

케이팝 팬의 영원한 고전 에프엑스의 첫사랑니(Rum pum pum pum). 오늘 같은 날 또 들어줘야지. 그런데 난 머리도 안 아프고 잠도 잘 올 것만 같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했었다. 여덟 살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잡고 있었으니 꽤 오래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까지는 바이올린을 대하는 태도가 꽤 건성이었고, 중학교에 가서야 바이올린을 향한 진심이 시작됐다. 여름이면 바이올린이 뻑뻑해지는 건 습기를 먹어서니까 제습제를 케이스에 넣었다. 그때야 바이올린 안의 습도계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활 털이 자꾸 끊어지는 바람에 연주회에서는 폼이 났지만(마치 열정적이고 광기 어린 연주자 같아서) 연주에는 지장이 있어서 활도 바꿨다. 나를 제외하고 다섯이나 되는 가족들을 시끄럽게 하는 것 같아서 줄에 끼우는 약음기도 사고 송진가루도 쓸 때마다 조심스럽게 닦았다. 오케스트라 시간마다 비브라토 연습도 열심히 했다. 이렇게 예민하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악기였건만, 내 바이올린은 당연히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니었고 나는 사라 장이 될 수 없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진 사람은 취미로 바이올린을 하던 나보다 훨씬 섬세한 관리를 해야 할 거고, 사라 장 씨는 훨씬 길고 밀도 있는 시간을 바이올린과 싸우면서 보냈겠지. 취미로 바이올린 하면서 새삼 그런 사람과 그런 악기를 존경하게 됐던 기억이 있다.

왜 갑자기 바이올린 얘기냐면, 진통제를 털어 넣으면서 사람 몸이 바이올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잇몸 아프면 사랑닌가 싶어서 병원 가야 하고, 난 여자니까 한 달에 한 번의 대량 출혈 여부에도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지구력이 없는 것 같아서 달리기를 하고, 달리기만 하다 보니까 시험기간 동안 자세가 흐트러져서 코어 강화 요가도 했다. 야근과 추가 근무가 잦아진 언니를 따라 종합비타민과 비타민D, 홍삼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그런데 이를 뽑고 나서는 땀 흘리는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이 빨리 돼 출혈이 지속될 수 있으니 운동은 자제하란다. 너무 자면 머리 아프고 덜 쉬면 졸린데, 안 쉬자니 할 일이 태산이다. 하지만 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도 아니고 마하트마 간디도 아니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사랑니를 뽑고 코어 관리를 했을 텐데 말이지. 나는 참 하찮기도 하면서도 아등바등하고도 있구나.

내 말은, 평범한 사람임을 유지하려고만 해도 사는 게 충분히 번거롭다는 이야기다. 말해 뭐해,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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