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라는 공간
열람실에 앉아 있다가 수업에서 마이크를 써야 할 일이 생겨서 도서관 로비의 라운지로 나왔다. 산만하게 놓여 있는 형형색색의 의자 중 빨간 의자를 골라 짐을 내려뒀다. 정면의 벽에서 학교의 위상을 홍보하는 영상들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너무 출출해서 수업에 집중을 못할까 봐 지하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였다. 그러나 편의점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는 무려 20년 12월(내가 한창 방송국에서 일하느라 학교 쪽엔 얼씬도 않던)부터 편의점 운영을 중단했다는 공고가 있었다. 난 무기력하게 자리로 돌아왔다.
중앙도서관 지하 편의점은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시절 아침거리를 사러 가던 곳이었다. 당시엔 아침을 열심히 먹지 않아서 주로 아몬드와 두유를 사 먹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내 일자리는 청구기호 00번대부터 700번대의 책들이 비치된 자료실이었다. 일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일이 없고 지루한 자리였으나,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려 갖은 애를 썼다. 학교 3년 다니면서 빌린 책의 절반을 그 시절에 빌렸다. 북카트 정리를 하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으면 가지고 자리로 돌아와서 읽었다. 읽다가 좋은 구절이 나오면 필사해 보기도 했다. 글도 많이 썼다. 하고 있던 시 합평회에 가져갈 시, 도서관 방문자 관찰기 등이 그 시간에 탄생했다. 교지 일이 바쁘면 교지 일을 했다. 너무 갑갑하면 몰래 800번대 책들이 있는 자료실에 가서 책을 빌렸다. (그 자료실 담당 교직원 선생님이 내 얼굴을 아셔서 들키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오후에는 졸면서 일본어 공부를 했다.
지금의 알록달록한 도서관 로비는 한 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결과물이다. 근로장학생을 시작했을 때, 로비가 공사에 들어갔다. 먼지 때문에 고생스러워서 (코로나 시국도 아닌데) 마스크를 쓰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그전에 우리 학교 도서관 로비는 전혀 알록달록하지 않았다. 붉은색과 황색, 갈색이 섞여 있는 따뜻한 분위기였다. 로비가 예전 모습일 때, 너무 푹신해서 찝찝하기까지 한 소파에 앉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공사 먼지를 잔뜩 들이마시며 두 달여의 근무를 한 뒤 리모델링의 결과물을 보았을 때, 앞으로 찝찝하지만 아늑했던 소파와 너무 환하지 않아서 편안했던 분위기를 그리워할 것임을 깨달았다.
'너무 푹신해서 찝찝할 지경이었던 붉은 의자'가 메인이었던 도서관 로비는 한편, 갓 대학의 신입생이 되었을 때에는 황홀하다고 느껴졌다. 투명 엘리베이터, 교지(교지를 처음 읽은 곳도 도서관이었다. 그렇게 교지에 들어가게 되었고 2년을 그 공간에 들이부었다.)가 가지런히 놓인 가판대, 조용한 소음을 만들며 오가는 사람들. '중앙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구석진 곳에 있어서 찾아가기 귀찮은데도 괜히 그곳에 앉아 있었다. 로비에 자리를 잡기 전에는 자료실에서 책을 골랐다. 장서가 너무 많아 박완서 소설의 청구기호는 '박'이 아닌 '박완서'라는 것, 학부생이라면 누구나 15권이나 되는 책을 대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교실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도서실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낸 내게 신나는 충격이었다. 시험기간에 공부가 안 되면 괜히 열람실을 빠져나와 자료실에 갔다. 시험기간이라 읽지도 못할 책을 빌려서 나오곤 했다. 도서관에서 시작해 캠퍼스 뒤쪽을 따라 이어지던, 기숙사에 가는 길마저도 좋아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난 학교 도서관에 몇 년에 걸쳐 정을 붙였구나 싶다.
지하 편의점도, 쿰쿰하리만큼 아늑한 로비도 없는 도서관에서 나도 그대로가 아니다. 대학에 발 디딜 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진로를 준비하고, 시간이 가는 걸 무서워하고, 학교에 봄기운이 돌면 애석한 화가 나는 나. 하지만 도서관의 냄새가 그러하듯, 박완서의 풀네임이 그러하듯, 그리고 공부하다 어김없이 자료실로 향하는 내 가벼운 엉덩이가 그러하듯, 어떤 것들은 내가 마시는 공기에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