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보통의 나는 잠을 잘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대에도 졸음이 스멀스멀 끼어들곤 한다. 그러나 일요일 밤의 나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다. 잠을 자야 월요일이 시작되고, 한 주를 망치지 않을 수 있다. 그걸 알아서인가 머릿속이 피로로 절여져도 이상하만치 잠을 이룰 수 없다.
오늘 밤도 그렇다. 피곤한 몸에 비해 의식이 지나치게 또렷해 지난주 일요일 밤을 회상했다. 그날은 친구가 집에 놀러 와 맥주 한 캔을 마셨고, 그 주말 내내 극장에서 영화를 두 편 봤다. 그 날은 다른 일요일 밤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잠을 청하던 언니와 나눴다. 언니의 대답은 "그땐 빨리 잠들만했어."였고, 필요한 답을 한 언니는 자러 가버렸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언젠가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침대를 떠나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라.'라는 조언을 들었다(혹은 읽었다). 그 조언대로 하기로 하고 우선 침실 밖으로 나왔는데 어쩐지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열었다. 불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
고백하자면, 위에 언급한 불면을 극복하는 조언이 내게 통했던 적은 별로 없다. 지금처럼 침대와 독립된 공간(대부분 식탁)에서 다른 일(보통은 독서, 특히 비문학 독서)을 하다 보면 눈이 뻐근해지곤 한다. 그것을 졸음이라고 착각하고 침대에 누우면 보이지도 않는 천장의 벽지 무늬를 세게 된다. 어쩌면 실은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데 억지로 깨어 있는 게 곤혹스럽게 느껴져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잠을 자지 않는 것과 잠이 오지 않아 잠을 못 자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늘 같은 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생각이 분열한다. 쪼개지고 쪼개지다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좋다거나 나쁘지 않은, 무색무취의 생각인 경우가 대다수다. 「내일 출근이다」, 「출근도 얼마 안 남았네」, 「보도는 그래서 언제」, 「그래서 언제 자지」, 「내일은 출근길에 이태원에서부터 잠들겠군」,「그래서 언제 자지」,「오늘 본 영화는 판단하기 힘들다」,「언제 자지」. 이제 보니 「언제 자지」가 문제다. 「언제 자지」가 나를 잠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나보다.
「언제 자지」 부분을 회피하려다가 살면서 경험한 쓸모없고 사소한 에피소드를 불현듯 떠올리기도 하는 듯하다. 그런 기억은 때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서 아주 창피한 기억의 한 가닥을 데리고 돌아오기도 한다. 다행히 오늘은 그럴 일은 없었고,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 덕에 수능 끝나고 그 친구와 떠났던 상하이 여행을 떠올렸다. 으슥한 곳에 있었지만 아늑했던 에어비앤비나 잘못 탄 지하철, 꽁꽁 언 발로 바닥을 딛고 서서 봤던 디즈니랜드의 화려한 불꽃놀이 같은 것들.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이지만 잠드는 데 도움은 되지 않으니까 자제해보려고 노력하다가 (다시 등장하는) 위의 조언을 또 믿어보기로 하고 식탁에 앉았다.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 잠이 오려고 하는 듯하기도 하다. 잠드는 데 전자파만큼 안 좋은 건 없다는데, 그렇다면 이 기분은 착각인가? 아님 이 기분이 착각인지 의문을 가지는 내 마음이 사실은 잠에 대한 강박일까. 잠에 강박(그러니까 「언제 자지」) 을 가지면 질 좋은 잠을 잘 수 없다는데. 나는 정말 질 좋은 잠을 자려면 한참 멀었다.
한편 이번 설 연휴에는 꽤 질 좋은 잠을 잤다. 일요일 아침에는 정말로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나면서 개운하다는 생각을 했다. 많이 자기도 했지만, 내 수많은 '많이 잔' 경험들과 비교해 봤을 때도 그 질이 남달랐다. 조금 자고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는 없을까? 나도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일부러 짧은 숙면을 취한다는 말을 남에게 해 보고 싶다. 그 꿈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숙면을 위해 반드시 멀리해야 할 전자파로부터 잠시나마 멀어져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