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유 Jan 13. 2021

퇴근시간


요즘 늦은 퇴근이 잦다. 타의보다는 자의가 살짝 더 강한 결정이다. 늦은 퇴근을 하면 길이 조용하다. 조용한 길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많아진 생각 틈에서는 창피한 기억과 불쾌한 기억이 마구 뒤엉킨다. 내가 여기까지 행동한 건 민폐일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이 공간에서 난 뭘까.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기억부터 불쑥 튀어나오는 장면들까지, 분별없이 튀어나오는 답도 없는 질문들을 막을 능력이 내게는 없다.

오랜만에 책을 읽거나 통화를 하지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퇴근이다. 이 곡은 6분이 넘는, 대중가요 치고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지지만, 한 번 들으면 꼭 되돌아가서 듣게 된다. 퇴근다운 퇴근을 자주 안 하던 시절에는 이 곡을 들어도 왜 <퇴근시간>이 제목인지 알 수 없었다. 요새는 내 그늘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다가도 그늘을 보이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는 나를 보며 이 노래의 제목이 가진 의미를 깨닫고 있다.

튀어나오던 질문들에 답하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 그 시간에 내일은 하루의 좋은 점을 찾아보기를, 내 말과 살을 스치는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해 보기를 바라는 게 낫다. 좀 더 세상과 연결된 내 모습을 찾고서 <퇴근시간>을 다시 재생하지 않아도 되는 어느 날의 내가 되었을 때는 그 노력의 결과에 만족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


+

'여자가 좋아하는 것'에 강한(그리고 슬픈) 편견이 있던 십 대 시절에는 치즈 노래를 의식적으로 안 들었다. 치즈 노래를 더 열심히 찾아 듣게 해 준 곡이다.


그 외에도 퇴근 시간에 듣기 좋아하는 곡은 오지은의 <서울살이는>과 <오늘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출근길에는 계절을 많이 타는 편이라 요새는 토이 노래를 많이 듣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짧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