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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Jul 31. 2021

0. 프롤로그

2019년에 끝낸 여행을 구질구질하게 왜 지금?

a. 요즘 나는

  일주일 전의 나는 법학적성시험(일명 LEET)을 하루 앞두고 벌벌 떨고 있었다. 수능 전날에도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같이 사는 언니, 그리고 오랜만에 서울에 온 동생에게 끊임없이 징징댔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어쩌고 저쩌고. 

  일주일이 지났고 그 모든 일이 작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사라지지는 않은 채 미미하게 이어져서는 마킹을 잘못하지는 않았을까 예상과 달리 어쩌구...이런 불안감이 남아 있다. 뭐 어찌 됐건 4년 동안의 고생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본가에 와서 유유자적하고 있는데 무지막지하게 심심하다. 척추가 남아나지 않게 누워서 OTT의 온갖 콘텐츠를 섭렵하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하루에 여섯 쪽(..)씩 읽으면서 틈틈이 올림픽도 보고 동생이랑 수다도 떨고 운전면허 시험 준비도 하는데 너무 심심하면서도 찝찝해서 몸이 뒤틀릴 지경이다. 


b. 지난 2년간

  2019년 12월 말,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LA 도시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때는 역설적으로 기대하게 된다. 2020년은 얼마나 행복할까.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너무 기대됐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됐다고 코로나가 퍼졌다. 그리고 2년이 갔다.

  처음에는 견딜만했다. 아르바이트를 두 개 뛴 덕인지 사람을 못 만나서 생기는 힘듦이 덜했다. 온라인 강의도 생각보다 편리했다. 인턴 구할 때 지금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체감하긴 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 외에는 본질적인 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다.

  문제는 리트를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중간중간 친구들도 만났건만, 꾸준히 상호작용하는 사람이 적다 보니 피로가 더 쌓였다. 1년간 이미 쌓인 피로가 있을 텐데 사람을 안 만나니까 그 지침이 주는 불쾌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과거의 나는 이런 때에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떠나도 마음의 짐은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떠났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이제는 갈 곳도 없었다. 어휴. 넷플릭스에서 <세계테마기행>과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을 보기 시작했다.

  언니와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을 같이 봤다. 우리가 함께 여행한 샌프란시스코 편이었다. 보기만 해도 바다 비린내가 느껴지는 항만이나 활기 넘치는 페리 타워를 부러움에 손에 땀이 차도록 보면서 대체 우리는 언제 저기 다시 가지 그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지난 2년간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앨범을 뒤져 몇 해 전에 있었던 캐나다나 프랑스(언니의 교환학생지)의 온갖 사진을 다 열어보고 현지인만큼은 아니라도 구석구석 기억하는 멋진 동네들을 추억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갔다. 아무 데도 못 가니까 입이라도 움직여야 했던 우리의 심정이 2년째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써 둔 여행기가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몇 장 올려두었을 뿐. 사진도 좋지만, 글을 쓴다면 어떨까. 그렇게 소중한 기억이라면 글로 남기면 그 기억이 더 오래 갈 텐데. 김영하 작가가 좋은 글을 쓰려면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 등 오감을 담은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효과적으로 내 여행지들을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러니까 길게 썼지만 코로나 시국에 심심해진 말년 대학생인 내가 과거의 여행으로부터 추억팔이를 보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다 그런 뜻이다.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c. 앞으로 나는

  이 매거진에 담길 여행은 모두 2019년 8월 16일에서 2019년 12월 31일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공간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밴쿠버-시애틀-포틀랜드 1.5 나이아가라 폭포 2. 몬트리올-퀘벡 3. 쿠바(아바나-트리니다드-바라데로) 

  4. 뉴욕-보스턴 5. 샌프란시스코-LA

  방문지를 순서대로 쓰되, 여기를 갔다가 여기를 갔다. 여기를 갔더니 이런 해프닝이 있었고 여기는 어땠다 식의 서술은 지양해보도록 하겠다. <힘빼기의 기술>에서 김하나 작가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만 쓴다면 조금 밋밋한 기행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언제든 그런 식의 서술이 나올 수 있음은 유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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