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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Sep 07. 2021

욕심 많은 나에게 하는 말

몇 년 전, 친구에게 고민을 말한 적 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느라 너무 힘든데 멈출 수가 없다. 자꾸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 일을 벌리는데 벌려 놓고 괴로워 한다. 난 왜 이렇게 사는 걸까? 현명한 친구가 답했다. 네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래. 그날 이후부터 벌려놓은 일들 사이를 허우적대고 있을 때마다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 때면 특히 '욕심'이라는 말의 가장자리만 벌겋게 빛이 나고 있는 듯했다.

대학 이후로 내가 성취한 게 뭐가 그리 많았겠냐만은, 적은 성취라도 욕심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놀고만 싶지 않다는 마음, 뒤쳐지기 싫다는 마음, 삶이 풍성했으면 하는 바람. 그래서 이런저런 활동에 손을 대고, 맡지 않을 수 있었던 자리를 위한 원서를 냈다. 노는 시간과 무언가 하는 시간의 경계도 흐릿해져서 리트가 끝난 방학에는 노는 게 좋지만 초조했다. (그래서 토익을 했고 지금은 더 빨리 했어야 했다는 생각뿐이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누워있기 시작했는데, 그럴때마다 먼 과거에 몸이 몇 개인 사람처럼 움직이던 내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그대로인 건 마음 속에 또렷한 단어 하나뿐이었다. 욕심.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경위는 이상을 따라주지 않는 현실(실력)이다. 리트가 끝났을 때 나 자신이 참 대견했다. 시험 치고 경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법조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오래했던 것도 아니니까 그 준비를 갑자기 시작해서 해냈다는 게 경이로웠다. 물리적인 성적, 그러니까 원점수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봤다. 생각하는 대학의 급간이 자꾸 떨어졌다. 처음엔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 싶었던 학교가 먼 이야기가 되고, 아래로, 아래로. 흥미로운 점은 밀릴대로 밀렸는데도 내가 리트를 응시하기 전에 설정한 마지노를 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 마음이 편해야 하는 거 아닌지.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아서 나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리트를 잘 봤다고 생각하고 쉬는 사이에 욕심이 아주 커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참 못난 의식의 흐름인데, 못났다는 말을 나에게 별로 쓰고싶지는 않다. 친한 언니에게 로스쿨 지원 자소서를 보여줬는데, 언니가 피드백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 자소서에 쓴 경험들은 너무 평이한데, 네 대학생활이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소서 피드백으로서 중요한 말이긴 한데 그것과 무관하게, 그 문장을 읽는데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반으로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뼈빠지게 뭔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나, 그리고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낭비한 욕심에 젖어 있는 나. 분명 내 대학생활은 다사다난했고 쉬운 게 없었는데 후자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지 않다. 나까지 나 자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피곤하게 느껴진다. 아니 그러니까 욕심 좀 부리면 어떠냔 말이야. 난 고생했단 말이지.

힐링용 에세이와는 다르게 자기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구조 속에 살고 있지만,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나 자신을 좀 인정하면서 살고 싶다.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 요즘 매번 누워 있다가 이불을 차겠지만...그래도 커진 욕심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과 눈 앞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밸런스를 잘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글이든 말이든 배출을 해야 하는 것 같은 게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 보니까 진짜 내가 못한 게 아닌데 요즘 왜 이렇게 저기압인지 ㅠ 제발 맘 좀 편하게 먹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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