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났다. 짐을 너무 많이 넣어 찢어질 것 같은 비닐봉지 같이 살았다. 3월에는 생각보다 학부와 다를 바 없게 느껴지는 수업을 듣고 열람실에 돌아왔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던 때라 어디 갈 데도 마땅히 없었다. 열람실 자리를 무겁게 지켰다. 그렇다고 앉아서 열심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공부를 했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책을 펴놓고 멍하니 활자의 생김새를 보거나, 집중의 끈을 놓고 졸았다. 지나온 사소한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쿡쿡댈 때도 있었고. 그 외의 시간들은 삐그덕거리는 뇌세포들을 붙잡고 듣도보지도 못한 법학 용어들을 머릿속에 우겨넣으려 애썼다. 그리고 귀가하면 책을 읽었다. 주말에는 영화를 봤다. 학부에서보다 더 많이 봤다. 그러는 대부분의 시간에 혼자였다. 중간중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밥과 커피, 술과 잡담을 나눌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순간들을 누군가와 함께였다고 할 수 있을까?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문단의 포인트는 외로움이 아니다. 다짜고짜 머리와 마음으로 밀어넣은 것들을 풀어 놓을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시험기간이 되었다. 맥락 없는 입력은 늘어만 갔다. 봤던 내용을 보고 또 봐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성에 차지 않는 마음을 미뤄두고는 유튜브를 틀었다. 남의 영수증이나 연애 사정을 두고 깔깔대는 방송들을 멍하니 봤다. 혹은 넷플릭스에서 유능하고 어리지만 과시와 망상이 심한 어린 여성의 사기극을 십 분씩 나눠 봤다. 입력을 피해서 택한 다른 행동이 또 입력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 무심코 블로그에 들어가, 아무 말이나 지껄여 놓은 사례형 답안지 사진을 한 장 올리고는 '인풋만 드립다 박다가 아웃풋을 남기고 싶'다는 말을 썼다.
그렇게라도 하고 보니까 자연스레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지금과 비슷하게 저녁이면 열람실에 틀어박히고 주말에는 불법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보지만, 매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듣고, 저녁에도 독해지라는 인강 강사의 말을 듣고 읽었던 자료를 읽고 또 읽어야 했던. 그때 내게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 각자의 눈앞의 길도 험악했으며, 학교는 전반적으로 우리를 가둬두려 헀기 때문에 끝끝내 우리는 혼자였다. 그 시절에는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 쓰지 않던 날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날을. 어떤 날에는 일기를 쓰다가 졸았는지 글자보다는 무늬에 가까운 볼펜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여하튼 꾸준히 글을 쓰려 했다. 지금은 이해한다. 난 입력에 대한 소심한 저항의 일환으로 출력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동기들과 술을 마셨다. 대화를 한 자리라기보다는 술을 마시는 자리였다. 그런 모임도 즐겁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여유를 되찾은 내게 필요한 것은 '아웃풋'을 만드는 것이구나,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뭔가를 잔뜩 받아들여야 했던 머리와 속마음을 말랑하게 만드는 일. 숙취 때문에 누군가가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냉면을 씹던 오늘 낮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