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느슨하게 내 감각을 놓아주자.
빛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잠이 안오고, 윗집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무섭거나 수면에 온전히 집중이 안된다. 아뿔싸!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까지 나는 것인가! 오 마이 갓!!! 오늘은 포근한 숙면을 취하기는 이미 물 건너간 일인것 같다.
누구의 이야기냐고? 바로 내 이야기이다. 나는 오감에 민감하다. 너무너무 민감하다. 물론 이런 부분으로 인해서 타인의 말에 감정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과의 관계를 잘 이끌어가며, 감각에 예민한게 장점이 되는 일이나 활동에는 좋게 발현이 되지만, 평소 일상생활을 해나갈때는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스트레스도 남들보다 더 잘 받으니 체내에 염증수치는 올라가고, 그것은 곧 몸의 어떤 부분에 통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또 몸이 아프면 마음도 힘드니 무기력함에 불면증까지 덤으로 가져가는건 기본이고 말이다.
평소 나의 사고의 흐름은 너무 감정형으로 흐르기 때문에 타인이 하는 말에 공감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그와 동시에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결단을 요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약한것 같다. 또 특정 상황에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나 스트레스 받는 상황들이 있을 때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른바 '과감각'의 상태가 된다. 마음의 통증이 결국에는 몸의 통증으로까지 이어지며 신경은 이내 날카로워지고 모든 일에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인 소진을 하게 된다. 악순환인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치유의 길은 '심리학'을 가까이 하는 것이었다. 심리학은 단순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어떤 '독심술'과 같은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고, 그 마음과 감정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아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나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조금 더 다양한 시각에서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될 수 있는 것이 좋은 점인 것 같다. 또, 나를 알게 되면서 치유받는 여정을 선물받는 것 또한 심리학이 내게 주는 큰 선물이다.
내가 심리학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며, 그걸 치유하는 것은 곧 몸의 통증도 잘 다룰수 있게 된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만큼,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과 힘듦을 겪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따스한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와 관련된 글도 늘 빠짐없이 쓰고있다.
'나'를 잘 알게 된다는 건 어떤 걸 뜻할까? 결국, 이 말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서 좋고 나쁘고 억울하고 화나고 당황스럽고 등등의 다면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고, 정의내릴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즉,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건 어떤 상황일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를 안다는 뜻이니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감정관리에 좋고, 번아웃, 타인과의 관계 해소에도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조금 더 친해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 내 자아의 색깔이 뚜렷해지고, 그 은은한 아우라가 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로 발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