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면적인 존재이기에, 비춰지는 형상도 다르다.
우리가 매 시기, 순간마다 다양한 성격 유형을 지닌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차분하지만 성격이 예민한 사람, 활달하고 털털하지만 덜렁대는 사람, 일 처리 능력이 좋지만 융통성이 없는 사람 등등 무수한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너와 나'를 상대하면서 우리는 그 상대방을 대하는데 있어서 나만의 방식과 전략으로 대응해 나간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나와 어딘지 모르게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영혼의 단짝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들뜨고 세상이 따스한 기운과 긍정 에너지로 가득 차게 된다. 한마디로, 내 안의 행복 에너지가 온전히 충족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에게 마주한, 즉 내게는 너무 좋은 사람이 다른 어떤 누군가에게는 아닐수도 있다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그 이전에, 왜 나는 어떤 사람을 좋게 봤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큰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을까?에 대한 답을 자문해보기 시작했다.
바로, 누구나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무수히 많은 특성들 중에서 각자 어떤 기준을 보는지 우선순위로 보는 것이 다르고, 그 기준 또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계속 변하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내가 마주한 어떤 대상은 나에게 어떤 시기에는 좋은 사람일수도 있지만, 시기가 지나면 그 당시의 관점과 대비해서 달리 보일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사람이 좋다, 나쁘다는 그 사람이 가진 기준대로 본 것이며, 그 사람이 나쁘다, 마음에 안든다고 했다고 해서 괜히 자책하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물론,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점이 누가봐도 사람이 아닌 행동을 하거나, 예의없는 매너를 가졌거나, 범죄자라거나 그런 사람은 제외이다. 그렇다면, 보통의 사람을 놓고 누군가의 호불호를 판단하는 건 그 대상을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도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마음또한 가변적이라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불투명하고 말이다.
이렇게 지극히 주관적인 '누군가'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세상을 해석하면서 우리는 당연히 누군가를 오해하기도 하고, 편견을 가지고 대하기도 하며, 세상에 대해 불만을 품기도 한다. 왜냐면, 나만의 프레임이 투영된 채로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런 결과가 빚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다소 왜곡된 시선과 관점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게 되며, 나도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되, 서로가 가진 간극을 조금씩 좁혀나가고 서로가 몰랐던 상대에 대한 점들을 그 계기로 더 알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다.
지금, 나에게는 어떤 누군가가 나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주파수를 크게 켜둔 채로 닿아있을까 궁금해진다. 상황도 세상도, 내가 바라보는 그 사람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는 존재임에 분명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극히 '나의 너무도 주관적인 기준'으로 그 사람이 좋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니까. 나 또한 어떤 사람이 좋아졌다면, 나만의 세계에서,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눈으로 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다분히 비합리적이면서 논리적이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