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빈틈'을 허용하는건 인생의 쉼표이다.

틈을 보인다는게 꼭 어딘가 서툰걸 의미하진 않는다.

by 이유미

"친해지고 싶은데, 뭔지 모르게 어려워요."


"늘 잘하고 싶어하고, 100점을 맞아야지만 나 스스로에게 가혹한 형벌을 멈춘다."


"어떤 상황에서건 최대한 실수를 보이면 안돼, 그럼 사람들이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볼거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군가 위와 같은 말들을 다름아닌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멀리 갈것도 없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이 '완벽주의' 프레임에 갇혀서 어떤 상황이 되면 늘 경직되고, 뭔가를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많았으니까.


특히, 이러한 '완벽주의'는 어딜 가든 마치 꼬리표처럼 날 따라다니며 어두운 그림자처럼 날 비췄다가 달아났다를 반복하기 일쑤다. 뭐든지 잘하려고만 하는 나의 성미는 특히 일을 할 때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이렇다.


"00씨, 이거는 이렇게 하면 안되겠죠, 스펠링 하나가 틀렸는데 맞게 해놨잖아요. 이러면 우리 회사의 신뢰도가 떨어질수도 있어요."


만약, 당신이 회사에서 상사에게 이런 업무적인 피드백을 들었다고 치자. 여기서 보통, '피드백'이라는 것은 순전히 '일'에 국한되어 그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며 더 나은 부분을 개선하게끔 전달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머릿 속으로는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이내 이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일지도 모른다.


"아...난 왜 또 실수를 했을까, 늘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어제 틀린게 있는지 확인도 여러번 했던것 같은데, 역시 난 실수 투성이에 무능하네."


어떤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당신은 어떤 일을 하면서 일에 대한 피드백을 당신 존재 자체에 대한 '평가'로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이내 당신 자존감을 깎아먹는 용도로 전락할 것이 농후하고 말이다.


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면서, 실수해도 괜찮다고 다음에 잘하면 되고 완벽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왜 유독 당신 자신에게는 그렇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사람이 되었는가?


당신은, 무언가를 잘해야만 가치 있으며, 능력이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뭔가를 못하거나 서툴러도, 실수해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풀어지고 당신에게 인간미를 느껴 더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약간의 '틈'을 허용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놀랄만큼의 마음적 여유를 가져다준다. 우선, 나 자신에게는 '실수해도 괜찮다'라는 마음가짐을 심어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건 너무 경직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일을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해주며, 타인에게는 당신이 그런 사소한 '실수'도 하는 사람이란걸 보고 뭔가의 틈을 느껴 인간적인 친근함을 매력으로 느낄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상황은 다면적이다. '완벽주의'라는 것은 '흑백논리'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 방식은 이것 아니면 저것은 안돼, 이것만 좋고 저것은 나빠, 이것은 성공이고 저것은 실패야 라는 극단의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고착화시킨다.


그런데 어떤가? 이 세상은 흑백논리, 완벽한 사람이 되는것 그 무엇도 아니다. 이 세상이 원하는 것은 결코 당신에게 무적의 슈퍼맨이 되라거나 결점없는 신이 되라는것도 결코 아니고 말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결코 시키지도 강요하지도 않은 '완벽주의' 프레임에서 조금씩 벗어나보자. 처음부터는 쉽지 않겠지만 한 걸음씩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 천천히 움직여보는 거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이 마인드를 행동으로 옮긴다면, 당신은 머지 않아 이러한 병들을 마음 안에 심어놓고 살게 될 것이다.


"화병, 불안병, 근심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잠도 안올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마음의 굴레를 당장 벗어버리지 않으면, 결국 당신이 가둬놓은 이 상황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영혼이 말라 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