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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Dec 15. 2017

꽃길에서 나락으로,

우병우 영욕의 30년



소년급제ㆍ특수통칼잡이ㆍ우꾸라지ㆍ레이저눈빛...다양한 별명을 달고다닌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검찰의 세 번째 영장 청구 끝에 마침내 구속됐다. 서울대 법학과 재학 시절 ‘소년급제’한 이후 꽃길을 걸어왔던 그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되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영욕의 30년을 정리했다.  


           

사진= KBS뉴스 영상캡처



경북 영주고 재학시절부터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서울대 법대 84학번으로 대학교 3학년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만 20세에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기록을 세웠다. 9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하며 검찰에 발을 들였다. 검사 임관 성적도 차석이라 촉망받는 차세대 스타였다. 92년 한직으로 꼽히는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발령됐으나 이후 법무부, 서울중앙지검 부장, 대검찰청 중수1과장·수사기획관 등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왔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 시절에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사건 수사에도 참여했다. 법조계에선 그에게 '특수통 최고 칼잡이'란 별칭을 붙여줬다.


대검 중수부 수사 1과장이었던 우 전 수석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하며 정치권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연달아 두 번 고배를 마시자 2013년 검사복을 벗어던졌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숨을 고르던 그는 이듬해 5월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비서관 발탁 8개월 만에 민정수석으로 임명, 사정기관을 총괄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법무부와 검찰, 국정원 요직에 그의 '사람'을 심어놔 '우병우 사단'이란 얘기가 회자됐다.


지난해 8월 승승장구하던 그가 처음으로 스타일을 구겼다.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이 우 전 수석에 대해 가족회사 ㈜정강의 회삿돈을 접대비와 통신비 등으로 쓴 혐의와 의경으로 복무 중인 아들이 운전병 보직을 받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포착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우병우·이석수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을 출범하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고 같은해 11월 피의자 신분으로 우 전 수석을 소환했다. 더불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검찰 특별수사본부(1기 특수본·본부장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가 출범했다. 민정수석이었던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 사건에 개입하고 국정농단 사태를 방조했다는 직무유기 의혹이 제기돼 의혹의 핵심에 섰다.


박영수 변호사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특별검사로 임명되면서 특검은 수사종료 시한을 열흘 앞둔 지난 2월18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차 영장의 심리를 맡은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를 기각했다. 세간에서는 우 전 수석을 향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어 '법꾸라지(법+미꾸라지)'라 부르며 힐난했다.


특검 활동기간이 종료되고 2기 특수본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를 우 전 수석 수사 전담팀으로 꾸리고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4월 우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 했지만 당시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를 기각했다.


수사 바통은 다시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에게 넘어갔다. 국정원 수사팀은 우 전 수석이 공무원과 민간인의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또 국정원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상대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도 수사했다. 국정원 수사팀은 지난 11일 세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에디터 김준  june@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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