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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Mar 22. 2018

[리뷰] '레이디 버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중2병' 낭만



되돌아보면 고등학생 시절은 누구에게나 행복한 기억임과 동시에 흑역사다. 어른만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반면 또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때. ‘레이디 버드’(감독 그레타 거윅)는 그 시기를 통찰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웃음과 공감, 감동의 삼박자를 선물한다.          


   



영화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대신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는 고등학생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의 모습을 담는다. 답답하고도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으로 대학을 가고 싶은 소녀의 고3 일상기다. 그 모습은 둥지 안에서 세상을 꿈꾸며 어른이 되고 싶은 아기새의 시선과 같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불렀는지도 모른다.


극은 크리스틴의 지극히 소소한 일상을 조명한다. 어떻게든 엄마와 학교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모습부터, 돈 많은 친구와 어울리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어 섹스 한 번 해보겠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읽는다. 어찌 보면 ‘허세’ ‘중2병’처럼 보이지만, 그 모습이 밉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도리어 ‘그때는 다 그랬지’하며 귀엽고(때로는 민망하지만),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크리스틴을 향한 시선이 미울 수 없는 건, 그의 성장이 너무도 멋지게 꾸며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성장이 멋질 수 있던 건 그녀의 곁에서 사사건건 간섭하지만, 애정 어린 관심을 보내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크리스틴이 고등학교 3학년인 시기 2002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는 그레타 거윅 감독에게 가장 익숙한 고등학생 때의 풍경이기도 하지만,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 ‘불안감’이 퍼져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속 엄마-크리스틴의 갈등은 그 불안감에서 시작한다.


크리스틴의 엄마 매리언(로리 멧칼프)은 사춘기 딸내미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크리스틴은 카톨릭 학교, 심심한 시골, 빡빡한 일상 등등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매리언이 경험한 세상은 매일 같이 야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빡빡한 곳이고, TV뉴스에선 매일 전쟁통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보여 지는 곳이다. 아직은 작은 딸을 내놓기에 세상은 너무 폭력적이다.


이 작품 속 모녀의 충돌은 대개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는 다 큰 것 같은데, 왜 나를 구속하는 거지?’라는 젊은 세대와 ‘네들은 아직 조금 더 커야 해’라고 타박하는 부모 세대의 의견 차이에서 나온다. 극 중 사라 존 수녀(로이스 스미스)는 “사랑과 관심은 같은 말”이라고 하지만, 아직 이를 이해하기엔 17살은 너무 어리다. 물론 아주 조금씩 이해해 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엔딩 즈음에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새크라맨토"가 아닌 "샌프란시스코"라 답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아직도 치기가 어려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제 곧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날아가려는 크리스틴이 마치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자신의 미래처럼, 방 한 쪽 벽을 하얗게 칠하는 신이다. 이제 그 하얀 벽에 무엇을 그려나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 크리스틴과 달리, 엄마는 어두침침한 테이블에 앉아 노란 노트에 빼곡하게 딸에 대한 마음을 채운다. 40여 년의 삶을 살면서, 자신이 채워왔던 건 딸에 대한 마음 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물론, ‘레이디 버드’는 언뜻 성장에 대해 계몽적인 영화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일상 유머로 포장해 러닝타임 내내 소소한 즐거움을 퍼뜨린다. 모녀가 흐뭇하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사소한 꼬투리로 매섭게 쏘아보고, 또 예쁜 옷을 발견하면 금세 마음이 풀리는 롤러코스터급 완급조절이 이 영화의 큰 유머 코드다.


이 대목에서 시얼샤 로넌과 로리 멧칼프의 연기는 압권이다. 특히 앞서 ‘브루클린’에서 당돌한 여성상을 선보였던 시얼샤 로넌은 또 한 번 ‘미친’ 연기로 감탄을 자아낸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필모그래피에서 더더욱 커다란 가능성이 엿보여, 앞으로 그의 영화적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전망이다. 러닝타임 1시간34분. 15세 관람가. 4월5일 개봉.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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