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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Jan 24. 2020

[인터뷰①]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캐릭터 '영웅화'였다면 출연 고사했을  것''



설 연휴 한국영화 BIG 3 중 1월 22일 개봉한 정치 드라마 ‘남산의 부장들’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순항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병헌이 있다. 지난해 말 ‘백두산’으로 8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설 연휴까지 흥행을 이끌어왔던 그가 ‘남산의 부장들’로 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다. 경자년 시작부터 이병헌은 새해 복을 가득 받았다.            



사진=BH 엔터테인먼트 제공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치 드라마다. 사건의 중심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형장의 이슬이 됐고, 사후 시간이 지나 재조명받기도 했다. 김재규를 모티브로 한 김규평을 연기한 이병헌은 실존인물, 실화라는 부담감에도 ‘남산의 부장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남산의 부장들’ 출연 과정에서 고민한 부분도 있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 출연을 결정할 때 이야기 안에 등장할 캐릭터에 집중해요. 그래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란 사람의 심리를 제가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만약 ‘남산의 부장들’이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누군가를 영웅화 시키려고 했다면 출연을 고사했을 겁니다. 우민호 감독이 심리 게임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것만으로도 다른 정치 드라마와 차별화되지 않나 싶어요.”


“김규평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캐릭터입니다. 그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자료와 증언을 찾고 들었죠. 종합적으로 제가 생각했을 때 김규평은 박통(이성민)에 대한 존경과 충성이 기본 베이스로 깔려있는 사람이에요. 다만 감정 표현을 자제하면서도 할말은 하는 스타일이었죠. 서너 사람의 관계가 아주 특수한 상황인 것처럼 보이지만, 직장 등 우리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바라봤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충성, 누군가와의 경쟁은 우리 삶에 존재하잖아요. 이런 부분을 관객분들이 공감하고 캐릭터에 감정이입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규평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디어가 보여준 중앙정보부의 수장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로서, 위엄있고 강단있으며, 때로는 좋지 못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권력의 2인자를 그저 평범한 인물로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캐릭터에 담아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게 했다. 이병헌 역시 김규평의 그런 면을 신경쓰며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규평 캐릭터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유독 말수가 적어요. 감정을 억제해야하는 캐릭터여서 어쩌면 클로즈업된 모습이 많이 필요했을 겁니다. 클로즈업 장면을 연기할 때 자칫하면 관객분들이 거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클로즈업이 캐릭터의 감정전달을 잘 전달하기도 하죠. 배우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들켜야하는 사람입니다. 들키지 않으면 무얼 연기 했는지 모르니까요.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나왔을 때 보시는 분들이 김규평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신다면 다행일 것 같습니다.”


“저의 목표는 관객분들이 ‘남산의 부장들’을 보며 김규평의 박통 저격이 대의를 위한 것인지, 감정과 욕심 때문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아주 순수하게 하나만을 보고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했을 때는 복합적인 감정, 의도가 숨어있겠죠. 김규평은 평소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극적인 상황에서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감정이 드러나게 돼죠. 제가 김규평의 그런 감정을 잘 표현했길 바랄 뿐입니다.”            




이병헌은 ‘백두산’ 때와 다른 분위기로 인터뷰를 했다. ‘남산의 부장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랬을까. 그의 말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또한 캐릭터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이병헌이 김규평을 얼마나 고민하며 그려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픽션 영화는 캐릭터를 자유롭게 창조할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실존하는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자유롭지 못하죠. 감정선, 대사처리, 행동 하나하나 신경써야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저와 타협해야하는 부분이 가장 많았던 작품 중 하나였어요. ‘광해’ ‘남한산성’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현 시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니 크게 부담이 없었죠. 하지만 이번 영화는 우리와 가까운 근현대사를 관통하잖아요. 역사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그만큼 배우들과 캐릭터의 싱크로율도 중요했죠. 저뿐만 아니라 곽도원, 이희준, 이성민 배우 모두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실존인물과 비슷한 모습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이성민 배우는 박통과 묘하게 많이 닮았죠. 처음 호흡을 맞추는 날, 이성민 배우가 분장한 모습을 봤는데 정말 많이 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민호 감독이 캐릭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영화에 ‘막사’도 나오는 데, 그게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술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분들이 ‘막사’를 즐겼다고 알고 있습니다.”


②에서 이어집니다.


박경희 기자  gerrard@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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