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집회 참담...어른은 남에게 폐 끼치지 않아요"
“‘69세’에서 성폭행 사건을 소재일뿐, 이 영화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수정은 확신했다. 8월 18일 개봉하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69세’는 69세 여성이 성폭행을 당해 이를 해결해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예수정에게 ‘성폭행’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가진 건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여성, 노년 그리고 어른은 평범하지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69세’는 개봉 전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처럼 나이 든 집단 여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주목을 받았다. 예수정 역시 “‘69세’는 ”효정이라는 개인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생각했다. 그는 영화 내용이 픽션일 것을 염려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대본을 보고 나서 ‘성폭행’은 그저 소재라고 판단했어요. 69세 여성에게 성폮행은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죠.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임선애 감독님한테 여쭤보니 다른 나라에서 실제 사건이 있어 그걸 바탕으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죠. 성폭행은 극에 동기를 마련해주고 효정이란 인물이 참담한 일을 겪고 나서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가 저한테 중요했어요.“
”영화를 보면 효정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아요. 저뿐만 아니라 관객분들도 공감했을 수 있고 다른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죠. 우리가 보는 노년의 삶은 매체로 인해 환상적인 모습으로 꾸며졌죠. 노년 개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다룬 영화나 소설이 별로 없잖아요. 죽음을 겪지 않았듯 노년을 겪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청년들이 불쌍하게 느껴져요. 늙기 싫어하니까요. 하지만 오래된 나무를 보며 5년 뒤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늙어가야겠다고 청사진을 그린 분들도 계시겠죠. 다행히 ‘69세’는 효정을 통해 지극히 사실적인 노년의 삶을 그려가요. 저도 나이가 들었지만 이래도 저래도 노년은 살아간답니다. 짬밥이 얼마인데요.
(웃음)“
그는 ‘69세’를 통해 여성 그 이상의 어른에 대해 생각해봤다. ”최근 광화문 집회 때문에 노년을 다시 바라보게 됐어요“라는 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노인이 만든다’고 판단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지금 어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예수정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말이다.
”광화문 집회는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저와 같은 머리 하얀 사람들은 어렸을 때 정자세로 가다듬고 태극기를 바라본 시대를 살았거든요. 매국자도 태극기에 대한 존중심을 배우고 자랐죠. 그런데 그런 분들이 태극기를 들고 시민의 광장에서 물을 흐려놓더라고요. 촛불집회하곤 거리가 멀었죠. 소리를 지르고 빨간 글씨를 쓰고 나쁜 말을 하는 걸 보면서 참담해졌어요. 나와 같은 노년의 모습이 저런 건가.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예요. 제 주변에 노인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친구, 가족 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요.“
”노년과 어른을 따로 놓고 생각해봤어요. 어른은 저의 개념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여기서 더 나아가 좋고 나쁨을 모두 아우르는 사람이죠. 하지만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노년의 모습은 섭섭한 구석이 많죠. ‘69세’는 소수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69세 여성이 자기 삶을 챙기고 살아가요. 그게 이 작품의 미덕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