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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Sep 15. 2023

[리뷰] '거미집'

[리뷰] 1970년대 금기를 사랑한 감독의 독백


시작부터 요란했던 영화 ‘거미집’이 베일을 벗었다.


사진=스튜디오 룰루랄라


한국영화계의 컬트적 존재 故 김기영 감독을 모티브로 했고, 부정적인 묘사로 인해 고인의 인격과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으로 김지운표 걸작이 소송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마치 그가 만든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이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거미집’은 1970년대 영화계를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다. 꿈도 예술도 검열당하던 당시 김감독(송강호 분)은 성공적인 데뷔작을 찍으나 이후에는 별볼일도 없는 감독 중 하나다. 매일 같이 악평과 조롱이 시달리던 그가 이미 촬영이 다 끝난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에 대한 영감을 주는 꿈을 며칠째 꾸면서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내가 생각했던 결말이 이것이 아니라면, 이보다 더한 열정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김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 이틀 간의 추가 촬영만이 주어지자 김감독은 제작자 백회자(장영남 분)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촬영에 막무가내로 나선다. 하지만 대본은 심의에 걸리고, 촬영은 수포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제작사 후계자 신미도(전여빈 분)의 재량으로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분),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분),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정수정 분)까지 불러모아 촬영은 강행된다. 그러나 바뀐 대본에 대해 불만이 큰 배우들과 검열 담당자까지 들이닥쳐 촬영장은 엉망 그 자체가 된다.



"실제 저런 일이 있었다고?"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검열을 거치지 않고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총을 든 권력 앞에서 미디어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본인들의 색을 드러낼 수 없었다. 마치 영화 속 김감독이 만든 ‘거미집’이 흑백으로 연출되는 것처럼.


세상이 흑백일 때 유일하게 꽃이 피던 순간은 언제나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들어주는 누군가들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때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는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이장희의 ‘불 꺼진 창’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심수봉의 ‘무궁화’는 선동성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전부 다 금지 콘텐츠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금단의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즐기고 듣고 보고 함께 앞을 보면서 나아갔다.



영화 속 김감독은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현 시대상과 자신이 찍고 싶은 모든 장면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눈동자와 카메라에 담는다. 위기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김감독은 열정을 내비춘다.


그러나 그런 그도 씁쓸한 현실은 피할 수 없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맛을 맞춰야 하거나 천재의 감독으로써 명성을 떨치기 위해 남모르게 행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들이 한껏 김감독과 관객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현실은 지독하리만큼 슬프니까. 그 슬픔 속에서도 어떻게든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념과 사상보다 더 혹독한 것이 관심받지 못한 처절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복귀작은 한층 더 뛰어난 미장센을 다루고 있다. 한편의 완벽한 영화를 넘어선 또 다른 신개념 콘텐츠를 본 것 처럼 말이다. 이번 영화가 더욱더 와 닿는 이유는 김지운표 미장센이 아닌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한 고증이 있었기 때문.


영화 속 주요 촬영장소인 ‘'신성필림' 스튜디오와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세트장은 세련되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자랑한다. 특히 7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로 설정된 '신성필림’주변에 한자와 한국어, 일본어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나 쉽게 드나들어야 하는 공간을 나무 판자로 막아놓은 모습은 온전히 시대적 분위기를 제대로 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싱글리스트 DB

또한 김감독의 시나리오 집필 공간과 사무실 곳곳에 붙어있는 메모, 영화 포스터 등은 몰입도를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붉은 벽과 화려한 조명 뒤 1~2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을 통해 걸작을 만들고 싶은 '김감독'과 인물들의 뒤섞인 욕망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한편 영화 '거미집'은 제76회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제70회 시드니 영화제, 제71회 멜버른 국제영화제에 이어 제18회 북미 판타스틱 페스트, 제67회 BFI 런던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들의 공식 초청을 받았다. 


러닝타임 152분, 15세 이상 관람가. 9월 27일 개봉.



조상은 기자 lillycia@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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