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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Feb 06. 2017

[영화리뷰] 불합리한 고정관념을 향한 돌팔매 '재심'

우리 사회에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전할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영화 ‘재심’(감독 김태윤)은 사회를 이로운 방향으로 작동시키려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공권력이 개인을 철저히 파괴하는 부정을 까발린다. 단지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픽션이 아니라, 2000년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사건’을 재구성한 팩션이라는 점이 관객들의 불안함을 더한다.             


‘재심’은 경찰의 강압적 수사와 증거 조작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던 피해자 소년 현우(강하늘)가 10여 년 후 출소, 오직 사익만을 추구하는 변호사 준영(정우)을 만나 살인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이 과정 가운데 얹힌 준영의 직업의식이 변화하는 지점은 큰 울림을 남긴다. 



불합리한 고정관념을 통찰하다

‘재심’은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다소 불합리한 ‘고정관념’을 정면에서 밝힌다. 현우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10대 소년이다. 기른 머리는 어깨에 닿을 듯하고 헬멧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세상의 시선에서 그는 비행청소년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불량기에 경찰은 그를 “양아치 새끼”라고 호명하고, 살인 사건의 주요 목격자인 그를 용의자로 둔갑시킨다. 꾸며진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경찰 권력에 논리는 없다.             

이 고정관념의 불합리함은 변호사인 준영에게도 통용된다. 아파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으로 나선 그는 판사에게 “자신의 출세를 위해 법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호명되고 만다. 비록 신념보단 돈이 필요한 변호사 캐릭터이기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변함없는 건 결국 과거의 행실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현재를 논하는 법 타툼의 본질은 흐려진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는 “법은 가진 놈들이 자기 이익을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라는 세속의 고정관념이다. 이 가운데 변호사 준영은 피해자 현우를 만나 변호를 시작한다. 본디 “힘없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이상을 간직했던 ‘법’, 준영은 점점 법을 향한 메타적 관점을 견지하며 이 불합리함을 체험하고, 결국 탄탄한 고정관념을 겨냥한 거센 돌팔매질을 시작한다. 



감정에 그치고만 아쉬운 설득

‘재심’은 수사학적 영화다. 법과 공권력의 불합리함을 밝히고, 관객들에게 일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스토리 속에서 탄탄한 논리를 구축하기보단 현우의 안타까운 사연에 극히 집중, 오직 측은지심으로만 관객의 납득을 요구한다. 이는 현실의 사연을 배경에 둔 영화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난관을 뚫어내려는 처절함은 감정적 힘만 갖는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로펌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며 사익을 추구하던 준영이 점점 현우의 사연에 빠져든다는 것. 표면적으로는 공권력에 대한 실망과 편모가정에서 힘겹게 자란 현우를 향한 안타까움이 이유로 드러나지만, 그는 애초에 그 실망스런 공권력에 기생해 사익을 추구하던 인물이었고, 생이별을 하고만 아내와 딸을 다시 만나기 위해 돈에 목숨을 걸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정의감을 불태우는 모습은 큰 설득이 되진 않는다.


둘째는 ‘법정드라마’ 본연의 장르 쾌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빽도, 돈도 없지만 실력만큼은 인정받았던 변호사 준영이 공권력을 상대로 법적 공방을 준비하면서도 번뜩이는 한 방이나 치밀한 전략이 다소 미흡하다. 번번이 결정적 증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지만 ‘어떻게’ 이 난관을 이겨내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다. 오히려 영화는 점점 불타는 그의 정의감만 조명한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항하는 무기가 '정의감'이라는 건 동화적 상상력에 가깝다. 



'휴먼드라마' 정우-강하늘의 호연            

‘재심’을 두고 법정물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배우 정우와 강하늘의 호연은 작품에 설득력을 싣는다. 잃어버린 신념을 찾아가는 변호사,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자 하는 청년. 두 캐릭터의 마주봄은 이 사건의 경중을 떠나 인간의 성장,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성숙의 키로 작용한다.


관객에게 언제고 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처연함과 억울함을 정확히 표현하는 강하늘은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 강렬한 감성적 호소를 남긴다. 특유의 넉살과 유쾌한 이미지를 발산하는 정우는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미를 연기하며 드라마의 울림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러닝타임 1시간59분. 15세 관람가. 15일 개봉.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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