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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Mar 23. 2017

[인터뷰] '제왕'이 된 배우 한석규

"내 인생 캐릭터는 제비 홍식" ②

                                                                                                                                                                                                                 

“원래는 뮤지컬배우를 하려고 입문했다. 라디오 성우로 시작했다가 드라마 탤런트를 했다가 한때는 영화 매체에 정신이 팔렸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직업 쓰는 란에 한때는 성우, 탤런트, 영화배우라고 썼다. 요새는 연기자라고 쓴다. 영화배우라고 적었을 땐 고급스러운 일을 한다는 허세가 있지 않았을까. 관통하는 건 연기인데.”



범죄액션영화 '프리즌'(감독 나현) 개봉을 앞두고 만난 한석규(53)는 1990년대 방송·영화계의 특급 스타였다.


드라마 ‘아들과 딸’ ‘서울의 달’, 영화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넘버3’ ‘접속’ ‘쉬리’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수작, 걸작들을 필모그래피에 쉴 틈 없이 채워 넣었다. 순도 높은 로맨스·멜로부터 가족드라마, 코미디, 액션 누아르, 판타지, 한국형 블록버스터 등 다양한 장르에서 쓰임새 좋은 ‘도구’로 맹활약했다.


2000년대 이후 ‘구타유발자들’ ‘음란서생’ ‘베를린’ 등의 화제작을 내놨으나 현재 충무로 40~50대 남자배우 주력군인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류승룡 이병헌 등이 영화에 ‘올인’하며 맹렬히 세를 확장하던 상황에서 스포트라이트에선 비껴나 있었다.


■ “드라마에 대한 보람, 자부심 커”


그들과 달리 드라마 출연을 쉼표 없이 병행해온 한석규는 최근 몇 년 새 ‘뿌리 깊은 나무’ ‘비밀의 문’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클래스가 다른 연기력을 과시하며 ‘제왕’으로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당시엔 일을 하면서 끝을 많이 생각했다. 내 일의 끝은? 나는 어떻게 끝낼까? 지금은 매체의 중요함보다는 뭐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영화에선 상상도 못할 걸 TV에서 할 수가 있다. 러닝타임 120분 안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연기도 두 매체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영화는 연기의 멋을, TV는 연기의 맛을 보여줄 수가 있다. 난 TV에 대한 좋은 경험이 많고 보람을 많이 느꼈다. 여태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 탑은 단연코 홍식(서울의 달)이다. 두 번째가 이도(뿌리 깊은 나무)다.”


숱한 히트작을 보유했음에도 자신의 캐릭터 ‘투톱’을 드라마 배역으로 선뜻 꼽는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묻어난다.


“드라마라는 무대를 통해 관객, 시청자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왔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크다. 지금도 TV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영화는 긴 호흡으로 연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TV는 오로지 클로즈업이다. 다른 게 없다. 그게 쥐약인데 그게 또 최대 장점이기도 하다. 대사가 많은 게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이런 모든 게 어렵지만 재밌기도 하다.”


■ 작품 선택 기준...가족 그리고 사회성


오랜 세월 연기를 해오며 작품이나 캐릭터 선택의 기준이 바뀌었을까. 잠시 생각을 고르다 예의 느릿느릿한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그때 그사람들’ ‘구타유발자들’ 모두 투자받기 힘들었던 작품들이다. 완성이 된 것만 해도 기적이란 이야기를 들은 작품도 있다. 그런 작품들 왜 했느냐?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가 좋아서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좋아하나 생각했는데 가족을 다룬 걸 좋아하더라. 또 학교에서부터 연극·영화의 기능을 그렇게 배워서 그런지 이야기의 근간은 사회여야 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회상이 담겨야 한다고 여긴다. 내가 386세대로 그 시대를 살아왔기에 그런 이야기를 좋아할 수도 있다.”


90년대 대표작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허진호)에선 여백이 느껴지는 투명함을, ‘초록물고기’(감독 이창동)에선 어둡고 진한 색깔을 그려냈다. 정원과 막동은 스크린 스타 한석규의 초기 모습을 해석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사람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2가지 채널이 있다. ‘초록물고기’가 고통과 독으로 이야기했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는 긍정적인 사랑, 희망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선택했고,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지 않나 싶다. 다시 정원을 연기한다면 더 연기를 안 할듯하다. 대신 (심)은하가 내게 주는 액션에 좀 더 집중할 거 같다. 더 예민하고 디테일하게 반응할 거다. 이렇게 과거 캐릭터를 복기하는 이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연기가 늘 새롭지는 않다. 비슷한 작업의 반복이다. 다만 얼마나 다른 감정을 얼마나 해내느냐가 관건이다.”


■ “마흔 넘어서야 연기 만족...어머니 영향 가장 커”


40대를 지나 50대 중반을 치닫고 있다. 중년의 배우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고 있을까.



“마흔을 지나고 나서부터 내 연기에 대해 얼추 만족하게 됐다. 남자배우는 40대부터다. 20대, 30대는 40대 이후를 준비하며 실험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기간이다. 마흔이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사람을 그려낼 수 있는 시기인 듯하다. 이번에 ‘프리즌’을 하면서 내 눈을 볼 때 볼만했다. 눈으로 뭔가를 하는 것 같아서다. 전에는 연기하는 내 눈을 잘 보질 못했다. 멍 때려 보인다고 해야 하나. 텅 비어 보였기 때문이다.”


항상 끝을 생각했다던 그가 30년 가깝게 전직하는 법 없이 연기에 매진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사람에 대한 궁금함은 변하지 않았다. 꽤 재밌고 의미 있는 호기심이다. 그게 바로 내 직업의 목표가 될 수도 있지 싶다. 내가 내 몸과 상상력을 통해 어떤 인물을 그려내고 보여주는 사람이구나를 깨닫는다. 사람다움이라는 게 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요즘은 성웅 이순신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 내가 내린 가장 최근의 답은 그의 모든 정신세계를 지배한 인물은 어머니였다는 거다. 나 역시 내 정신세계의 뿌리를 내려준 분이 어머니임을 곱씹는다.”



사진= 쇼박스 제공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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