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원스텝'
무대 위의 별이 스크린의 별로 다시 태어났다. '원스텝'으로 충무로 루키를 노리는 산다라 박(33) 얘기다. 지난 31일 강남 압구정 이봄씨어터에서 배우로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산다라 박을 만났다.
'원스텝'은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시현이 슬럼프에 빠진 작곡가 지일(한재석)을 만나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오는 5일 개봉을 앞두고 그녀에게 '원스텝'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상업영화나 독립영화같은 걸로 고민하진 않았다. 일단 음악영화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다. 시현 캐릭터도 평소 내 모습과 비슷했다. 약간 어둡고 차분하고 얌전한 모습이 나랑 많이 닮았다."
전재홍 감독은 "준비 자세가 굉장히 좋다. 함께 작업해 본 신인 배우들 가운데 최고였다"면서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등 준비성이 철저하더라. 그래서 실수도 거의 없었다"고 산다라 박을 칭찬한 바 있다. '원스텝'의 출연 배우 조동인 또한 그녀가 촬영을 통틀어 NG를 세 번밖에 내지 않았다며 놀라워했다.
"촬영할 때 NG를 잘 안 내는 편이다. 순간 집중력이 좋다. 한 번 할 때 하자는 쪽이다. 여러 번 하는 게 더 힘드니까. 확 몰입한다. 완벽주의는 아니지만 완벽해지고 싶어 한다. 실수하면 오래 생각하는 편이라 실수를 최대한 안 하려고 준비를 많이 한다. 이번 영화는 리딩을 많이 하면서 사전 준비를 많이 했다."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산다라 박이지만, 노력으로도 채우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다름 아닌 언어였다. 산다라박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약 10년간 필리핀에서 살았다. 2004년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에서 데뷔, '필리핀의 보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필리핀에서는 영어를 사용했다. 한국에서 한국말로 연기하려니까 힘들더라. 어미 처리도 어렵고. 감정을 표현할 때도 말을 어떻게 해야 대사가 질문하는 것처럼 들리는지, 화가 나는 것처럼 들리는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대사를 한 가지 톤으로 소화한 경우도 많았다."
그녀는 첫 주연을 맡은 '원스텝' 이전에도 여러 웹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 실력을 갈고 닦았다. 충무로에서는 신인이지만 연기 경력이 꽤 오래된 배우인 셈이다.
"예전부터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감독님도 그렇고 주변에서 감정 연기에 강하다는 평을 많이 해줬다. 마지막에 지일이 전해 준 CD를 들으면서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울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도 서럽게 눈물이 나더라. 그 장면을 찍고 나서는 정말 시현이가 된 것 같아서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아쉬웠던 건 화내는 신이 아쉽다. 평생 화내거나 싸워본 적이 없다. 내 딴에는 열심히 했는데 직접 보니까 '더 화낼걸' 싶더라."
산다라 박은 엄정화처럼 가수와 연기를 오가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한다. 가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침 영화 속에서도 노래를 하는 캐릭터다. 그녀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였을까.
"홍대에서 이틀 동안 라이브 신을 촬영했다. 그때 되게 재밌었다. 연기한다는 부담 없이 평소에 하듯 무대에서 노래만 하면 됐으니까. 진짜 부르지 않아도 되는데 나도 모르게 부르게 되더라. 이틀 내내 열창하느라 목이 쉬었다. 가수 활동을 하기 전에도 음악을 많이 좋아했다. 음악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듣는 것 같다"
산다라 박은 2009년 걸그룹 2NE1의 멤버로 데뷔, 'Lollipop' 'I Don't Care' 'Lonely' 'Ugly' '내가 제일 잘 나가' 등의 히트곡으로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초 멤버 공민지가 탈퇴를 선언하며 그룹은 10월 공식 해체됐다. 당시 공민지가 SNS를 통해 2NE1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쳐 불화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룹은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멘붕'이 왔다. 좀 많이 외로웠다. 처음엔 이제 더는 2NE1이, 멤버가 아니고 가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해체를 했어도 멤버들 사이엔 딱히 변한 건 없다. 만날 연락한다. 어쨌든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연기는 꾸준히 할 생각이다. 가수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아서 노래도 하고 싶다. 무대의 느낌이 너무 그립다."
지금은 연기자로 진출한 가수들이 늘면서 많이 사라진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수 출신 연기자에 대한 편견은 존재한다. 가수로서의 경력을 발판으로 쉽게 캐스팅이 됐다고 생각하거나, 연기력이 좋지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 등이다.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거니까 당연히 서툰 점이 있다. 그런 얘기들이 나올 거란 예상은 하고 있다. 받아들일 준비는 돼 있다. 꿈이 만능 엔터테이너니까, 꿈에 한 발자욱씩 다가간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산다라 박은 남성그룹 엠블랙의 멤버였던 천둥의 누나로, 둘이 함께 '연예계 비주얼 남매'로 통한다. 천둥은 2016년 12월 첫 미니앨범 'THUNDER'를 전곡 자작곡으로 발매하며 솔로 가수로 터닝했다. 그는 자신이 동생을 "업어 키웠다"며 미소를 지었다. 동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였다.
"시사회에 동생이 왔었다. 우린 무뚝뚝한 남매다. 동생은 나한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냥 '잘했네' 그게 끝이다. 최고의 칭찬이다. 동생이 엠블랙 때부터 자작곡을 앨범에 실었다. 이제는 직접 앨범을 만든다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 만날 밤 새워서 연습하더라. 고집이 세다. 앨범 나오기 전까지는 (앨범 준비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그랬다. 평소 돈도 음악관련 기계에만 쓰고 다른 데는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이번에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기특했다. 음악 하는 사람이면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지 싶어서 많이 응원하고 있다."
산다라 박은 이달부터 영화 '치즈 인 더 트랩' 촬영에 들어간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 웹툰은 지난해 tvN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 홍설(오연서)의 절친 장보라로 분해 열정과 에너지 넘치는 매력을 발산할 예정이다.
"보라는 발랄한 대학생이다. 평소 내 이미지랑 닮았다고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놀듯이 한번 해 볼 생각이다. 드라마 '치인트'를 찾아볼까 하다가 안봤다. 나도 모르게 따라 할까봐. 영화 볼 때는 드라마랑 다른 느낌으로 가야 하지 않나."
그는 연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다시 신인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배우로서의 지향점을 물었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도록, 내가 잘하는 걸 늘려가고 싶다. 지금은 나한테 어울리는 캐릭터 위주로 하고 있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다크하고 센 캐릭터들을 해보고 싶다. 형사나 판사, 검사 같은."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인턴 에디터 진선 sun27d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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