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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pr 02. 2017

 [인터뷰] '보통사람'

장혁이 명품 악역을 만들어낸 방법

                                                                                                                                                                                                                                                                                                  

최근 성황리에 종영한 드라마 '보이스'로 명실상부 연기파 배우의 명성을 입증한 장혁(40)이 이번에는 살 떨리는 악역 캐릭터로 스크린에 귀환한다. 군사독재의 절정기던 1987년,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싶었던 이들의 투쟁을 그리는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 3월 23일 개봉)에서 국가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냉혈한 안기부 실장 규남으로 열연한다. 영화 개봉을 앞둔 22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혁은 세 번째 안타고니스트를 선보이게 된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보통사람'은 비루한 현실에 허덕이는 강력계 형사이자 평범한 가장 성진(손현주)이 무고한 연쇄살인범 용의자 태성을 검거하고,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이 주도하는 은밀한 공작에 가담하게 되는 스토리를 담았다. 당대의 국민적 이슈를 배경으로 그려낸 팩션은 시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며 수십 년 전을 돌아보게 만든다.


"촬영을 끝내고 처음으로 스크린을 통해 본 영화는 막막하면서 먹먹했다. 나는 그 시절 민국이란 아이의 입장이었다. 5학년이었는데, 군부독재가 있었는지도 몰랐고 수류탄 가스 냄새 한번 맡아본 적 없었다. 나이키 운동화가 최고였고, 바나나 좋아하고, 오락실 가서 몰래 오락하다가 잡혀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성장했다. 지금은 내가 저 시절 성진처럼 어떤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였다면 살아가는 게 좀 막막했을 것 같더라.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저러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싶었다"


최근 대한민국이 국정 농단 사건으로 뜨겁게 들끓은 가운데 영화 '보통사람'이 개봉했다. 모두의 관심사가 현 시국에 쏠려 있는 것은 이해하나, 동시대를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을 보며 답답한 지점도 존재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좋은 소식도 충분히 있을 텐데, 뉴스 할애가 대부분 그렇지 않은 뉴스들, 사건 사고가 터진 뉴스들이 대부분이다. 채널을 튼다고 다른 뉴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 시국도 시국이지만, 지금 국외로는 미국 대통령도 바뀌었고 중국도 강경한 태세를 취하고 있지 않나. 우리나라도 빨리 상황 정리를 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계속 한 사건에만 얽매여 있으니까 그게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극중 규남은 국가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연예인 마약 수사부터 살인사건 조작까지 못 할 것이 없는 지독한 악인이다. 느슨한 말 한마디에도 인물의 힘이 실린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악역을 선보이기 위해 말투부터 손짓까지 계산을 거쳤다.


"느릿느릿, 말투부터 마치 아기들 대하듯 한다. 성인을 그렇게 대한다는 건 자신보다 한참 아래라는 인식을 깔고 들어가는 거다. '풍선'이라는 중국 영화에 나온 고문기술자를 모티프로 삼았다. 부드러운 인상의 아저씨가 중절모를 쓰고 약방 가방을 들며 나온다. 침을 찌르더니, 15분에서 20분가량 사이에 마비가 되고 서서히 사망할 거라고 말해준다. 고급 단어를 쓰면서 차분하게 말하는데 너무나도 살벌하더라. 그런 걸 좀 녹여보고 싶었다. 급박하게, 강압적으로 할 필요도 없다. 부드럽게 권유형으로 툭 던져도 상대방은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이제 '악역'이 욕을 먹는 시대는 사라지고 없다.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동시에 연기력을 입증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부각되기 때문에 오히려 악역을 선호하는 배우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규남 캐릭터는 순전히 '악'만 내세우기보다는,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감정만큼은 녹여내고 싶었다. 


"규남은 80년대의 시스템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올라있기도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감독님은 규남을 안타고니스트로서의 역할과 그 시대 시스템을 대표하는 인물로 표현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단 두 가지 포인트에선 감정을 집어넣고 싶다고 했다. 시국선언문을 들고 은사님을 찾아가는 장면과 맨 마지막 검사들이 취조 당하는 장면이다. A.I도 아닐뿐더러, 그저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다. 50, 60, 70년대를 다 거친 뒤 80년대에 왜 그 위치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손현주와는 '타짜'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 연기합이다. 사적으로 알고 있던 선배와 공교롭게도 영화 속에서 대적관계를 이뤘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손현주 바라기의 모습을 실컷 보여주기도 했다. 장혁이 손현주를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닌 까닭은 무엇일까. 


"근 십 년 넘게 보면서 느낀 점인데, 현주 형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롤모델 같은 사람이다. 그만큼 나를 비롯해 후배들이 많이 붙는다. 선배로서 말을 많이 하고 조언을 해주는 게 아니다. 눈높이를 맞추고 그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다.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좋아하지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잘 없지 않나. 현주 형을 보면서,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눈여겨 본 후배들과 합을 맞췄다. 영화 줄거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조달환과 지승현은 물론, 드라마 '보이스'에서 부부로 연을 맞춘 오연아도 함께 하게 됐다.


"지승현이 나오는 장면을 볼 때에는 영화 '영웅본색'을 보는 줄 알았다. 남자의 감성을 제대로 보여준 캐릭터가 아닐까. 조달환도 짜장면 먹는 장면에서의 느낌이 정말 좋았다. 배우들이 각자 맡은 포지션에서 자기 것들을 잘 해준 것 같다. 오연아는 확실히 색깔이 느껴지더라. '보이스'에서 죽어있는 연기를 할 때에도, 하얀 천 아래서 내가 하는 연기의 감정을 다 받고 있는 게 보이더라. 혼자서 자기 것만 열심히 연기하는 게 아니라 상대 배우와 리액팅을 주고받으며 연기를 한다"


영화 속에선 30년 뒤 노인이 된 규남의 모습이 나온다. 직접 분장을 한 노인 규남의 모습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기 인생에도 이상향이 있듯, 나중에 나이를 먹었을 때 늘상 바라온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데뷔 초부터 한결같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장혁은 나중에 어떤 얼굴이 돼 있을까.


"영화는 영화대로 봐주길 바란다(웃음). 나이가 들었을 때 규남 같은 모습이면 정말 싫을 것 같다. 예전에 미술을 잠깐 했을 당시 데생을 하다가 묘사를 배우게 됐는데, 눈두덩이를 올려서 그리면 사욕이 많은 느낌이 들더라. 나는 정갈하게 늙었으면 좋겠다. 호감형 얼굴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생김새가 변한다기 보다는 인상이 바뀌는 것 같다. 계속 웃으면 그런 분위기로 변화할 테다"


사진 : sidusHQ 제공


에디터 이유나  misskendrick@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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