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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pr 21. 2017

 [리뷰]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는 용기

 '언노운 걸'

                                                                                                                                                                                                                                                                                                  

세계적인 명감독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 형제가 신작 ‘언노운 걸’을 들고 한국 극장가를 찾아온다. 대형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가 지배한 봄 박스오피스에 유다른 감각을 선사할 예정이다. 지난해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호평을 모았던 이 작품은 다르덴 형제 특유의 작가관을 듬뿍 담고 있어 시네필의 기대감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다르덴 형제는 그동안 ‘로제타’(1999), ‘더 차일드’(2005), ‘내일을 위한 시간’(2014) 등 부조리한 사회 아래 소외된 이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언노운 걸’ 역시 그들만의 브랜드가치를 반짝반짝 빛내는 작품이다.





영화 ‘언노운 걸’은 의사 제니(아델 에넬)의 사연을 담담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어느 날 저녁, 누군가 제니의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그녀는 진료가 끝났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신원미상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제니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소녀의 이름을 찾아 나선다.


‣ 죄책감, 그 가슴저림에 대하여...


제니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의사다움’을 이야기한다. 갑자기 쓰러진 환자를 보고 당황하는 인턴 줄리앙(올리비에 본나우드)에게 “의사는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해”, “환자에게 휘둘리면 안 돼”라며 자신의 신념과 조건에 대해 설명한다. 언제나 위급상황에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하는 의사에게 이 조건은 ‘필수’이고, 의사 제니에게는 자부심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인턴을 향한 설교(꼰대짓)를 늘어놓는 가운데, 갑자기 들려오는 이질적인 벨소리를 향해 “열어주지 마!”라고 짜증을 내는 건 깨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제니는 그 벨소리의 주인공이었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 순간 의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제니는 죄책감에 휘말린다. “의사는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당당히 말했던 그녀가 잠깐의 짜증을 참지 못해 사람을 죽이고 만 것이다. ‘의사’의 조건을 실천하지 못했기에 제니는 단 한 번 본적도 없는 소녀의 죽음에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





이후 보통의 영화였다면, '누가 소녀를 죽인 걸까?'라는 의문점으로 서사가 진행됐을 것이다. 하지만 '언노운 걸'에서는 범인이 아니라 죽은 소녀의 '이름'을 찾고자 시도한다. 극 중 여러 등장인물들은 소녀의 이름을 묻는 제니에게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라며 반문한다. 하지만 제니는 "단지 소녀의 이름을 알고 싶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어쩌면 제니가 알고자하는 이름은 자신이 안고 살아가는 죄책감을 정면에서 마주할 용기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면했기에 죽음을 맞이한 소녀, 다들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만, 애써 그를 무시하고 모른채한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소녀의 이름을 구하는 제니만이 자신의 외면에 대한 진심어린 용서를 구한다.





‣ 현실의 문제를 영화에 엮어내다


이후 제니는 ‘신원불명’ 시체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거리를 쏘다닌다. “내가 문만 열어줬어도 살았을 텐데”라고 자책하는 제니, 남들은 “네가 죽인 건 아니잖아”라 말하지만 이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영화를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단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왜 이토록 죄책감에 빠지는지 공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르덴 형제는 이 스토리에 현실의 문제를 교묘히 엮어, 2017년 현재 프랑스에서 대두되고 있는 사회문제를 스크린에 옮겨낸다. 제니의 걸음을 따라 하나둘 죽은 소녀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는 아프리카 이민자이고, 생계가 힘들어 성매매를 업으로 살아왔다. 살해당하고만 그 날, 그녀가 누른 현관 벨은 지질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엄밀히 따지면 제니를 비롯한, 우리들은 여러 사회문제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내 탓이 아니다”라는 핑계로 불우한 이웃을 무시하고, 남들의 힘듦보다도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더 큰 고난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제니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다르덴 형제가 평범한 의사 제니에게 이토록 커다란 고난을 지게한 건, 관객들에게 잠깐이나마 시선을 바깥의 고난으로 돌려보라는 제안과도 같다.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건 그리 큰 노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도움을 요청하는 벨을 눌렀을 때, 쉬었다가라며 문을 열어주는 작은 수고가 필요할 뿐이다.


러닝타임 1시간46분. 12세 관람가. 5월3일 개봉.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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