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답답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맥락이 없었단 느낌이었다. 지난 토론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던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밉상처럼 여겨졌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신 싸워주는 여전사를 연상케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뻔뻔할 정도로 흔들림이 없었다.
23일 열린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는 다소 느린 말투와 경상도 사투리, 순발력 부족으로 답답한 느낌을 주는 반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선두주자답게 안정감을 강조했다. 즉문즉답이나 감정노출을 최대한 자제했고 기존 선거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측면도 엿보였다.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선택, 당시 비서실장으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 거짓말에 대한 집요한 추궁을 말끔하게 처리하지는 못했다.
5인 후보 중 지지율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유승민 후보는 반전의 모멘텀을 확보할 이슈 메이킹이 숙명이라 집요함과 송곳질문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국민의 피로감이 문제였다. 안보 관련 이슈는 지난번 토론에서 다뤘음에도 반복해서 논제로 삼음으로써 지엽적인 부분에 천착, 말꼬리 잡기, 깐족댐으로 비쳐진 측면이 있었다.
지난 토론회 때 문재인 후보에게도 매서운 비판공세를 펼쳤던 심상정 후보는 대북인권결의안과 ‘송민순 문건’ 관련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지자 유승민 후보에게 “북한팔이 좀 그만하라”며 문재인 후보를 대변하듯 강경 보수층의 색깔론에 반격을 가했다. 또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문 후보가 답답했는지 당시 기권을 했을 때의 상황 논리를 대신 답변하기까지 했다. 반면 토론에 나왔으면서 저 사람(홍준표 후보)과 토론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철수 후보는 “내가 안철수냐 박철수냐” “국회 상임위를 열어 아내 김미경 교수와 문 후보의 아들 특혜채용을 검증하자” 식의 주제와 상관없는 것을 가지고 문재인 후보에게 연이어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맥락 없다”는 인상을 안겨줬다. 반면 자신의 대북관, 이념적 좌표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대북송금, 햇볕정책 등에 대해선 공과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부분을 밝히지 않은 채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토론회 모두부터 심상정 유승민 안철수 후보로부터 ‘돼지흥분제’ 파문과 관련해 사퇴 압력을 받은 홍준표 후보는 웃음 띈 여유 있는 모습으로 “과거의 일에 대해 이미 고해성사를 했고 다시 한번 국민에게 사과 드린다”고 대처했다. 이후에도 노련한 인파이터처럼 흔들림 없이 ‘마이 웨이’를 걸었다. 문재인 안철수 외의 타 후보들이 토론을 거부했기에 여유로운 측면도 있었다. 시청자에겐 “후안무치하다” "소신이 뚜렷하다"는 엇갈린 인상을 줄만했다.
전체적으로 이날 토론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5인 자유토론방식의 한계로 인해 효율적인 논의가 진행되기 힘들었다. 후보들이 합종연횡하며 정략적 스탠스를 취하면서 실속도 재미도 없었다.
후보자들의 문제도 도드라졌다. 토론에서는 상호 존중, 대안 제시가 필수인데 색깔론, 동문서답, 개인적 이야기 등이 돌출하며 토론의 맥이 끊기기 일쑤였다. 시청자 사이에서 “TV토론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회의가 든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더불어 의원정족수, 독일형 비례대표제 등 정치·선거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이 드러나 정책과 자질을 보고 후보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힘들었다는 의견도 속출했다.
사진출처= KBS 대선후보 TV토론 방송화면 캡처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