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되는 배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모델로 기억한다. 이솜(28)의 '배우' 데뷔는 2010년 영화 '맛있는 인생'이었다. 그의 첫 연기 도전이었고, 첫 주연이었다. 이듬해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연이어 여주인공을 맡았다.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쌓던 그는 2014년 스릴러 '하이힐'에선 차승원, 같은 해 치명 멜로 '마담 뺑덕'에서는 정우성과 호흡을 맞추며 진한 색깔을 뽐냈다.
대선배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한동안 '준비되지 않은 배우'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이솜은 "그런 시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다. 채찍질이 없었다면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며 의연한 태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시기를 거치면서 심정이 마냥 평온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댓글을 보면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누구나 그럴 거다. 그런 것들이 맞는 얘기일 수 있다. 대중이 느끼는 게 맞는 거니까. 그런 반응은 안 보려고 하진 않는다. 아직 배울 게 많고 부족한 게 많고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채찍질이 옅어진 것 같다고 하자 "나 스스로는 아니다"며 연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내보였다. 힘든 와중에도 연기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직도 나를 차갑고 까칠하고 도도한 이미지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다. '마담 뺑덕'의 캐릭터는 강했다. 내가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 그러지 않았나 싶다."
현대극만 찍던 그에게 지난 31일 개봉한 '대립군'은 첫 사극 도전이었다. 영화는 1592년 임진왜란, 명나라로 피란한 임금 선조를 대신해 임시조정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세자 광해와 생존을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이 참혹한 전쟁에 맞서 운명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솜은 광해(여진구)를 보위하는 의녀 덕이를 맡았다.
"해보지 않은 캐릭터였다. 평상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있어서 끌렸다. 체력적인 것보다는 연기적인 고민이 더 컸다.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사극이 나랑 어울릴지를 많이 생각했다.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대립군'에서 덕이와 광해의 관계는 궁녀와 왕세자, 부하와 주군이 아니라 얼핏 큰 누나와 막내동생에 가까웠다. 동생도 없고, 누군가를 그렇게 일편단심으로 보필해 본 적도 없었던 이솜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로 다가왔을 터였다.
"감독님이 일반 궁녀 느낌보다는 감정이 있는 느낌으로 하라고 하셨다. 친구나 정말 친한 누나에 가깝다. 약간의 모성애도 있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함께 연기한 배우 여진구는 나이로는 한참 어리지만 경력으로는 선배였다. 이솜은 촬영하는 동안 여진구가 정말 '선배님'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어색했는데 여진구씨 덕분에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구씨가 일부러 편안하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많이 의지가 됐다. 정말 의젓하다. 촬영을 안 할 때는 그 나이 같다. 해맑고 장난도 잘 친다. 호기심 많고, 맛있는 걸 좋아하더라. 나랑 배수빈 선배님이랑 셋이서 가위바위보로 저녁 내기하면서 놀고 그랬다. 주로 배수빈 선배님이 지셨다."
모델과 배우라는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실제의 이솜은 퍽 소탈한 사람이다. 동안이라고 하자 "그 사진들이 옛날 사진이어서 그렇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친해지면 솔직하고 털털한데 낯을 많이 가린다. 지금도 좀 그렇다.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 것 같다. 일상적인 걸 좋아한다. 요즘은 피아노를 기초부터 배우고 있다. 가끔 친구들과 드라이브 가고 영화 보고 그런다. 공포물은 무서워서 안 본다. 최근에는 '겟 아웃'이 좋았다. 그건 호러 아니다. 스릴러다!"
8년차 배우는 "아직 딱 내 작품이다, 하는 걸 못 만난 것 같다"며 연기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이런 욕심이 연기를 계속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영화라는 게 매력이 크다. 같이 만들어내는 게 너무 좋다. 현장 느낌도 좋고. 작품을 할수록 점점 배우고 싶은 것들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내 부족함이 보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또 그런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듯 싶다."
앞으로 쌓아갈 필모그래피가 더 많을 20대 배우에게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냐고 묻자 단번에 또래 배우와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단다. 강렬한 색깔의 선배 염정아와도 공연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냐는 뻔한 질문을 던졌다.
"다양한 캐릭터가 어울리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 그것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게 관객에게 전달되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인턴 에디터 진선 sun27ds@sli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