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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Jun 28. 2017

 [인터뷰] "'박열' 반일 영화 아냐"

이준익 감독 6문 6답

                                                                                                                                                                                                                                                                                                  

'동주'로 깊은 울림을 남겼던 이준익 감독이 '박열'로 돌아왔다. '박열'은 일제강점기 실존인물인 독립투사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를 조명한 작품이다. 





많은 이들에게 아직 생소할 '박열'(1902~1974)은 일제에 맞서 직접 도쿄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편 조선 청년이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무마시킬 목적으로 박열을 잡아 가두지만, 오히려 그는 자진해 대역사건의 피고인이 되며 기죽지 않고 '불량'한 행동을 이어간다. 철저한 고증과 특유의 위트로 '박열'을 그려낸 이준익 감독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1. 박열은 법정에 조선의 화려한 관복을 입고 등장하고, 판사와 동등한 높이의 의자에 앉겠다는 등 대담한 요구를 이어간다. 고증과 창작의 경계를 궁금하게 하는 모습이다.


일본 사법체계를 완전히 농락한 행동이니 물론 믿기 힘들테지만 고증의 결과다.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당시 기사를 요청해 제공받았고, 그 근거로 그대로 담아냈다. 당시 박열의 행동엔 일본 야당이 반발해 청문회가 열릴 정도였다. 관련 장면도 찍었는데 영화가 너무 늘어질 것 같아 뺐다. 


내 나름대로 정한 고증의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실존인물만을 다룬다. 그러니 실존인물이 허구의 인물을 만나면 고증이 아닌거다. '박열'의 경우 박열, 후미코 등 이름이 나온 인물들은 다 실존인물이다. 둘째, 사건의 사실성이다.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박열을 대역죄인으로 몰아간 일, 살기 위해 유치장에 뛰어든 조선인을 자경단이 뒤따라와 살해한 것도 박열이 직접 목격한 사건이다. 셋째, 영화 속 시기가 연표대로 맞아야 한다. 앞뒤가 뒤죽박죽되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재구성된 거다.  


고증을 철저히 한 건 일본 관객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에게 '박열'의 주인공은 후미코이고 모두 도쿄에서 벌어진 일인데, 고증이 형편없으면 본질을 폄하하지 않겠나. '동주'가 7월에 일본 개봉하기도 하지만, 현지 개봉과 상관없이 책잡히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신경을 썼다.





2. 기존 독립투사들을 조명한 작품과 아나키스트 박열이 등장하는 '박열'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나키스트와 코뮤니스트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남북 대치 등 정치적 불편함 때문에, 우리나라가 근대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자세히 소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나키스트는 권력에 저항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권력을 잡는 게 아니다. 아나키스트는 조직화가 안 되고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거대조직이 생길 수가 없다. '박열'에서도 아나키스트들이 모여 친일파를 때려주잔 얘기를 하다가 "마음 맞는 사람만 하자"고 하지 않나. 강제성이 없고 개인의 평등을 위해서만 행동한다. 이들이 변절해서 권력을 잡은 게 코뮤니스트다. 


페미니스트, 동물애호가, 환경운동가 모두가 아나키스트다. 권력을 빼앗아오는 게 아니라 부당함에 저항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니까. '촛불' 역시 정확한 아나키스트다. 


3. 많은 사람들이 박열에 대해 모를 거다. 20년 전, 영화 '아나키스트' 준비를 하다 알게 된 박열에 대한 영화를 지금 만들게 된 이유가 있다면. 


박열은 납북돼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한반도라고 하면서 남한만의 역사, 즉 반토막만을 배운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에 대해선 지난 70년 동안 배우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라도 관심있게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말로 '가짜 뉴스'라고 하는 유언비어의 피해를 본 박열이란 놀라운 조선 청년을 모르고 산다면 미안하지 않나.


4. '반토막난 역사'란 말이 인상깊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필요성을 말하는 건가.


'박열'은 반일영화가 아니다. 박열은 내각의 권력에 저항했지만 일본인과 노동 연대를 하는 등, 일본 민중에겐 친밀감을 느꼈던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반일감정을 반복적으로 부추기는 뉴스, 영화만 봤다. 정치사, 전쟁사만 다루고 민중사를 소홀히 한 결과다. 


이 사회는 소수의 주류가 권력을 쥐고 다수의 비주류 위에 올라앉은 형태다. 우리는 일본 제품은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도 반일을 외친다. 왜 그런 걸까? 반일감정을 부추겨서 누군가가 이득을 본다면 이건 잘못된 것 아닐까? 





5. 영화의 메시지 전달에 대해 경계하는 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박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누군가는 '박열'을 생경하고 어색하게 여길 거고, 누군가는 관련해 더 알고 싶어할 거다. 같은 영화를 봤다고 해서 모든 관객이 다 똑같이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다 똑같으면 공산주의지.(웃음) 단지 '박열'을 통해 역사를 보는 관점이 더 넓어졌으면 한다.


나 또한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싶어 선플은 그냥 넘기고 '악플'을 많이 본다. 새겨서 다음 영화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악플은 독약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약인 거다. 악플을 피하다간 나중엔 갈 데가 없을 거다.


6. '동주'와 '박열'은 각각 한달만에 찍은 영화들이다. 굉장히 짧은 촬영기간인데도 배우들을 만나보면 항상 그 작업과정과 영화에 푹 빠져 있더라. 특별한 작업방식이 있나.


실존인물의 후손이 살아있으니 당연한 거다. 얼마나 더 조심스럽겠나. 철저히 고증하고 두루 팔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했는지, 그 연기의 근거를 대야 하는 거니까. 이번 '박열'의 이제훈과 최희서도 정말 열심히 했다. 


우리는 지식 공유를 한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협동관계인 거다. 특히 '박열'의 경우 후미코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남성적 시각이 아닌데, 특히 40~50대는 이해 못할 부분이 있어서 더욱 신경써서 작업했다. 





사진=라운드테이블(지선미)

                                                                                                                                                                                                                                                                                                  

에디터 오소영  oso0@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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