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어떻든 사랑하는 작품"
적잖은 혹평, 개봉 당일에 일부 장면 유출까지, 여러 이슈로 뜨거운 '리얼'이다. '리얼'의 80~90%를 소화한 배우 김수현은 누구보다 영화에 대한 반응을 직접적으로 느꼈을 듯 보였다.
'리얼'은 난해한 줄거리와 의도를 읽기 쉽지 않은 연출로 적잖은 관객의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28일 진행된 김수현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그 의문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김수현이 왜 '리얼'에 끌렸는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리얼'은 카지노를 운영하는 야심가 장태영(김수현)과 그에게 접근하는 의문의 투자자 르포 작가 장태영(김수현)의 이야기다. '리얼'은 '1인 2역'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다중인격에 대해 그린 영화다. 투자자는 야심가와 닮아가고 싶어 이름을 장태영으로 개명하고 얼굴 또한 성형한다. 김수현은 여러 '장태영'을 표현하기 위해 가면 연기, 액션, 목소리 변조, 다양한 표정 연기를 펼쳤다. '리얼'의 이해를 돕고, 김수현의 작업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인터뷰를 10문 10답으로 정리했다.
1. '리얼'의 대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을 직접 소화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어요. 촬영 후 다시한번 실감한 것은 '가면 연기'의 매력이에요. 가면을 씀으로써 더 과감하고 에너지있게 표현할 수 있었죠. 가면의 힘을 많이 받았어요.
평소 연기할 때 하나의 캐릭터를 두고도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리얼'엔 캐릭터가 여럿이다보니 고민이 깊었지만 그 개수만큼 매력도 더 많았다고 생각해요. 에너지가 두 배로 소모되는 느낌이었지만 재밌었어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숙제가 많은 무서운 대본을 이겨내는 것부터 시작했고, 센 장면이 지닌 힘에 먹히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노출이나 베드신은 촬영 한 달 전부터 벌벌 떨었죠.
2. 첫 다중인격 연기는 어땠나요?
제목은 '리얼'이지만 가짜 인격들의 이야기죠. 캐릭터들의 특징을 잡고 들어가는 게 꽤나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업이더군요.
슈트 장태영(야심가)은 항상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고 명령하듯 말해요. 항상 껌을 씹는 이유도 그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설정이었어요.
르포 작가 장태영(투자자)은 소극적인 성격이고, 일거리에 눈을 반짝이는 '일 중독'이예요. 보석이 박힌 가면을 쓰는 취향인데, 그렇다면 이런 목소리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목소리 연기를 했어요. 말을 늘리기도 하고 독특한 제스처를 쓰고,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게 목표였어요.
3. 쉽지 않았을 작업인데, 그럼에도 출연한 이유는 뭔가요?
분명 부담스럽고 겁나고 힘들지만 '표현할 방법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전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런 제 마음을 지키고 싶어요. 이전에도 다양하게 도전을 이어왔고, 이번엔 그 도전 종목이 조금 다른 정도죠.
표현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 특히 화장실 신에서 두 장태영이 부딪치는 신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았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또 화장실의 거울까지 더해지며 서로의 거울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4. 액션신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간결하고 지저분하지 않은 액션을 원하셔서 크랭크인 3개월 전부터 복싱을 했고, 현대무용을 접목한 장면의 안무를 숙지하는 덴 한 달 좀 넘게 걸렸어요. 액션 합을 짰다기보단, 안무였다고 생각해요.
5. 에프엑스 출신 설리(최진리)와 파격 베드신도 소화했는데, 호흡은 어땠나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에너지틱하고 굉장히 열정이 있어요. 놀랐고 자극받기도 했죠. 특히 '리얼' 속 송유화(설리)의 오디오가 보여주듯 목소리가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해요.
베드신에선 같은 마음이더라고요. 내가 배에 힘을 줘야겠다 싶으면 힘을 주고, 숨을 몰아쉬면 같이 쉬었어요. 이건 별로 필요없는 공감대가 아닌가.(웃음)
6. '리얼'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거나 노출·베드신에만 관심있는 반응을 보면 어떤가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대본을 보고 감독님께 '이렇게 해석해봤는데 맞느냐'며 계속해서 검사를 받았었는데 많이 틀렸었거든요. 베드신뿐 아니라 '리얼'에 비주얼이 센 장면이 많으니 시선을 뺏기는 건 어쩔 수 없고요. 하지만 점점 눈에 익으면 발견되는 새로운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물론 '리얼'에 관심이 있을 때 얘기긴 하지만….
7. 시사회 때 보인 눈물이 의외였어요. 김수현을 여린 배우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저도 분하거나 연기가 마음먹은대로 안 되면 이불에 발차기도 하고 베개에 대고 울기도 해요.(웃음) 시사회 땐 막내 스태프들을 보니 함께 촬영한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어요. 촬영현장에서 '형'이라고 불린 게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8. '무서운 대본'이라고 했는데, 살면서 무섭다고 느낀 게 있다면요?
배우, 연예인으로서의 김수현과 인간 김수현 간 거리감이 점점 생긴다는 걸 느꼈을 때 모든 게 무서웠어요. 나를 배려해주고 위해주는 것을 고마운지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할 때였죠. 카메라를 벗어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얘길 한다든가, 날 표현하는 게 힘들고 겁났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생각해보니 누구나 갖고 있는 고민인 것 같아서 위안삼고 극복하며 '내가 30대가 됐구나' 느꼈죠. 30대가 된지 6개월입니다!
9. 김수현의 30대의 목표는 뭔가요?
여유를 갖는 거예요. 여유가 묻어나는 눈빛, 표정, 손짓이 표현되는 레벨이 되고 싶어요. 30대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짜놓진 못했어요. 입대 전 작품을 하나 더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군에 다녀온 후 착실히 쌓아가겠습니다.
10. 이번 '리얼'에 대해 관객이 느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제가 표현한 색들을 보고 '해소가 됐다', '보며 만족했다'고 하시면 행복할 것 같아요. 전 결과가 어떻게 되든 '리얼'이란 작품을 굉장히 사랑하고 있어요.
사진=코브픽쳐스
에디터 오소영 oso0@sli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