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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Jul 04. 2017

[인터뷰] '옥자' 봉준호 감독

 "안서현 존재감은 타고난 것"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투자, 흔치않은 소녀 원톱 영화, 칸영화제 진출….


 



수많은 이슈에 휩싸인 화제작 '옥자'는 '타고난 이야기꾼' 봉준호 감독이 거대한 동물을 본 듯한 착각을 하며 시작됐다. 날씨 흐린 날 이수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고가도로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크고 순하며 어쩐지 시무룩해 보이는 동물을 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함께한 장희철 디자이너와의 작업을 통해 지금의 옥자를 구현해냈고, 여기에 2001년 쓰다 묵혀 둔 이야기를 더했다.

"'플란다스의 개'가 쫄딱 망한 후 쓰다 만 시나리오예요. 깊은 산속에서 자란 아이가 우연히 계곡에서 시가 1억쯤 되는 산삼을 발견해서, 미자가 찼듯 힙색 하나만 달랑 메고 서울로 가는 내용을 쓰다 말았어요. 재미가 없어서 옛 노트북에 차곡히 묵혀져 있던 이야긴데, 갑자기 소환된 거죠."

29일 공개된 '옥자'는 미자(안서현)와 동물 옥자의 우정,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밝고 경쾌한 톤, 동화를 연상시키는 줄거리로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아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과는 사뭇 달라, 괴수가 도시를 때려부술거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CG로 탄생된 옥자는 실물처럼 정교하고, 미자와 눈빛으로 교감하는데 여기엔 500억 가량의 예산이 들었다. 

"소동은 한국에서 벌이고, 미국으로 간 후에는 감정적 교류에 초점을 맞췄어요. '옥자'에서 옥자가 총 296신 등장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죠. '괴물'에는 괴물 등장 신이 116신인데, 이 숫자를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감독에겐 '이 예산이면 괴물을 N컷 보여줄 수 있겠다'는 게 나오거든요. 멋대로 등장 장면을 배치했다간 파산하죠.(웃음) '옥자'는 마당을 슥 지나가기도 하며 계속 미자 곁에 머물죠.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요."





봉준호 감독은 동물권 이슈를 돼지로까지 옮겨왔다. 옥자는 거대기업 미란도가 만들어낸 '슈퍼 돼지'다. 개·고양이와 겉모습은 다를지 모르나 옥자 역시 미자의 친구이자 가족이란 점은 같다. 그만큼 '옥자'에는 옥자와 미자의 교감과 함께하는 생활을 담아냈다.

"미자는 자신이 쓰는 효자손으로 옥자를 긁어주고, 밥을 먹다 오이를 툭 부러뜨려 넘겨주죠. 함께 먹고 자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절벽에서 미자가 옥자를 구해주는 장면은 액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옥자가 미자의 생명의 은인이란 걸 보여주는 부분이죠."

미란도는 세계적 식량 위기의 대책이라며 유전자 조작을 통해 거대한 돼지를 만들고, 실험기간이 끝나자 미자에게서 옥자를 갑작스럽게 데려간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 사전조사를 하기 위해 다녀온 미국 도살장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곳을 벗어난 후로도 계속해 냄새가 따라오는 것 같아 한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못했고, 강제(?)적 채식주의자로 두어달 살기도 했다. '옥자'는 인간의 욕심을 위해 대량으로 '식용' 동물을 키우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로 작용한다. 

"크면 상품성이 높아지죠. 농약을 많이 쓴 채소가 크고, 유전자 조작을 한 연어가 큰 것처럼요. 이젠 유전자 조작을 한 생선이 북미에서 시판된다고 해요. 물론 양식장 안에서만 기르게 돼 있는데, 한 마리만 잘못 나가게 되면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거죠." 





무엇보다 '옥자'를 만들면서는 미자 역을 맡은 안서현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어린시절 드라마 '드림하이' '바보엄마' 등에서는 똘망똘망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였던 안서현이지만, 영화 '하녀'나 '박쥐', 지난 2015년 출연한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는 뚱한 표정으로 남다른 '포스'를 내뿜은 배우다.

"인간 안서현이 지닌 독특한 매력이 영화에서 그대로 드러나길 바랐어요. 언제나 '아이 돈 케어', 어디든 신경쓰지 않고 뚱하니 있는 느낌인데 무게중심이 있어요. 현장에 제이크 질렌할이 온다는 소식에 스태프들이 들떠 있는데도 '저 사람이 제이크인가… 오늘 밥차 메뉴 뭐예요?' 그런 식이예요. 안서현과는 연기 얘길 한 게 아니라 '이 반찬은 맛이 어땠고' 그런 얘길 진지하게 했어요. 전 따로 디렉팅한 게 없어요. 카메라가 돌아가면 연기를 너무 잘 해요."

'옥자'에서 등장하는 동물이 개나 고양이가 아닌 돼지이듯, 안서현의 캐스팅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지는 듯싶다. 

"'마더'에서도 엄마는 숭고해야 하고, 엄마와 섹스에 대해 얘기하면 안 되고, 그런 스테레오타입을 깨고 싶었거든요. 안서현은 '아역은 귀여워야 한다', '매 장면 사랑받아야 한다' 그런 느낌이 없었죠. 안서현에겐 특유의 존재감이 있는데, 이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거라 봐요. 그 덕분에 틸다 스윈튼과의 기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팽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옥자'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과 국내 상영과 관련해 잡음에 휘말린 바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되는 영화가 영화제에 진출하거나, 극장에 상영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스트리밍 서비스, 극장 상영 모두 하고 싶었던 내 욕심 때문"이라면서도 감독으로서 새로운 흐름을 바라봤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신작을 준비 중이라고 해요. 그런 거장도 영화를 만들 때 여러 문제에 부딪힐텐데, 감독들은 그것을 실현 가능한 곳을 찾아 다니는 거겠죠. 창작자에겐 기회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봐요. 이번 배급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많은 협의를 통해 적은 숫자라도 큰 스크린에서 보는 기회가 생겨 다행이예요. 미국에선 타란티노 감독이 소유한 극장에서 '옥자'를 틀게 됐는데(2일, 봉준호 감독과 타란티노 감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 베버리 씨네마 극장에서 열린 '옥자' GV에 함께 참석했다), 무조건 35mm 필름프린트만 트는 곳이라 거꾸로 디지털로 찍은 영화를 필름화하게 됐어요. 수집가로 소문난 타란티노가 침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죠.(웃음)"

사진=NEW

에디터 오소영  oso0@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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