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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Jul 06. 2017

[인터뷰] 영화 밥상 차리는 김영덕

 BiFan 프로그래머


언제나 독창적이고 번뜩이는 영화들이 가득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올해도 어김없이 시네필의 곁에 찾아온다. 개막을 꼬박 일주일 앞둔 가운데 열의에 불타고 있는 BiFan 사무국에서 김영덕 수석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병맛(?) 영화’를 좋아하고 ‘호러영화의 복권’을 위해 열일한다고 말하는 그는 영화제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동안 프로그래머에게 쉴 틈은 없다. 상영될 영화를 고르는 건 물론, 영화인들을 섭외하고, 관객들이 입맛에 따라 영화를 찾아볼 수 있도록 세팅하는 역할을 한다. 빡빡한 일거리에도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주 메뉴가 영화라면, 프로그래머는 셰프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에도 자랑스런 영화제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다들 성격이나 특성이 달라요. 각각 특색을 살리고, BiFan이라는 식탁에 어울리게 맛있는 영화를 고르는 게 프로그래머의 역할이지요. 셰프랄까요?(웃음) BiFan이 가장 중점으로 둔 기준은 상상력과 신선함입니다. 마이너한 영화나 실험적인 작품을 보듬는 것도 중요하지요. 대중이 두루두루 좋아할 영화도 좋지만 소수가 빠지는, 엣지있고 느낌 충만한 영화가 더 어울리는 축제입니다.” 


엣지있고 느낌 있는 영화를 추구한다는 그의 말처럼 BiFan은 ‘재밌거나 잔인하거나 엽기적인 작품을 틀어주는 영화제’라는 이미지가 짙다. 까다롭게 골라낸 영화가 가볍게 소비되는 게 아쉽지는 않은지 물음을 던졌다.


“개인적으론 그런 이미지가 좋아요. 다른 영화제가 학교를 가서 공부하는 느낌이라면, BiFan은 방과후에 교문 밖에 뛰쳐나가서 신나게 노는 느낌인 것 같아요.(웃음) 규범이나 모델에 맞추는 게 아니지요. 사실 어디 가서 ‘나 호러 좋아해’ 그러면 B급 취급 받잖아요. 이곳에선 평소 감추고 살던 내 취향을 오픈하고 공유할 수 있지요. 덕후들의 장 같은 느낌이랄까요?(웃음)”    


         



김영덕은 스스로를 ‘덕후’라고 말하며 “호러영화의 복권을 위해 힘쓴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다소 의외의 취향이지만, 원초적인 공포와 대면할 수 있는 호러영화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다.


“피가 튀고 무서운 호러영화는 굉장히 원초적인 쾌락을 자극합니다. 사회규범을 벗어난 즐거움이랄까요?(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평소엔 터부시되는 행위를 즐기는 숱한 페스티벌들이 원래는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나, 나쁜 걸 정화시키기 위한 제의(祭儀)였거든요. 호러영화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끼면서 어른이 되는 거죠.(웃음)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면, BiFan에서 호러를 즐기시는 건 어떨까요?” 


그는 “영화제가 재밌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번에 주목한 문제의식은 ‘여성’이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여성 영화인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다. 여성 배우의 설자리가 적다라는 비판은 물론, 여성 캐릭터의 성적대상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BiFan에선 여성 캐릭터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는 의미로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 특별전을 기획했다.


“매회 영화제를 열기 때문에, 그 해의 화두,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재고를 시도하는 게 영화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의 기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론 ‘여혐’ 논란도 있고, 영화계에서는 여성영화인 성희롱 문제도 크게 문제가 됐었죠. 그에 대한 나름의 문제의식 재고를 요청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무서운 여자들' 기획을 통해 영화 속 편견 어린 시선에 사로잡힌 여성 캐릭터의 틀을 깨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호러영화를 예로 들면, 항상 여자는 비슷비슷하게 활용 되는 것 같아요. 저조차도 비명소리 듣기 싫어서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요.(웃음) 또 성적 대상화 문제도 빼놓을 수 없죠. 그래서 여자 악당, 악녀가 멋지게 활용된 영화를 선보이고 싶었어요. 이번 특별전이 ‘왜 우리는 한정된 눈으로 여성 캐릭터를 봐야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앞으로 여러 영화제나, 영화 속에서 여성을 주목하게 되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너무 반가울 것 같네요.(웃음)” 


이번 BiFan엔 주제의식 넘치는 영화는 물론, 마이너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독창적 재미가 넘치는 영화들로 가득하다. 지난해만 해도 ‘맨 인 더 다크’ ‘중독노래방’ 등 다양한 작품이 발굴돼 시네필을 흥분감에 빠뜨렸다.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이번에도 상당한 영화들을 초청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올해는 유독 기대되는 작품이 많아요. 특히 ‘개인적’으로는 채식주의자가 인육의 맛을 알게 돼 변한다는 스토리의 ‘로우’나 임산부 킬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프리벤지’, 이번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된 고 김영애 선생님 주연의 ‘깊은 밤 갑자기’ 등등이 관객분들의 소름을 책임질 것 같아요. 제가 호러를 좋아하다 보니까 너무 무서운 것만 말씀드렸네요. 하하.”              





호러뿐 아니라, 유쾌하고 발랄한 감성도 가득 넘치는 BiFan 밥상을 제대로 즐기는 법에 대해 한 마디 조언을 부탁하자 그녀는 빙긋 웃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미리 경로를 짜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280편이 넘는 영화를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산뜻하고 따뜻한 영화를 원하시면 월드판타스틱 블루 섹션하고 패밀리존, 완전히 익스트림하게 가고 싶으면 레드와 금지 구역을 찾아주시면 됩니다. ‘무서운 여자들’ 기획도 놓치지 마시고요.(웃음)” 


관객들을 위해 BiFan이라는 맛있는 밥상을 열심히 차리고 있는 김영덕은 쉴틈 없이 달리는 게 힘에 부칠 법도 한데도 인터뷰 내내 눈을 반짝이며 자랑거리를 쏟아냈다. 마지막 질문으로 이 힘의 원천을 묻자, 영화제 기간 동안 부천을 찾을 관객들과 소통할 생각만 하면 러너스하이(Runner's High)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영화제 전까지도 바쁘지만, 영화제가 시작해도 메가토크를 비롯해 GV를 하루에 2~3개 정도 진행해야 해서 더 바빠요.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건 관객들과 소통하는 게 좋아서지요. ‘소통’이라는 게 요즘 너무 많이 쓰여서 진부하지만, 사실 인간은 먹고 자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소통하는 존재니까요. 넓은 소통 장이 열린다고 생각하면 설레요.”  


사진=권대홍(라운드 테이블)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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