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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Sep 05. 2017

[인터뷰] '품위녀' 정상훈

 "천천히 걸으며 많은 자국 남기고 싶다"



배우 정상훈(39)이 배우 인생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달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극본 백미경, 연출 김윤철)에서 그는 아내 우아진(김희선)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재벌 3세 한량 남편 안재석 역을 맡아 열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밉상 중의 밉상이지만, 그는 오직 자신만의 매력으로 캐릭터를 완성해 나갔다. 시청자들은 그런 안재석을 보고 화를 내다가도 특유의 유쾌함과 뻔뻔함에 애정을 보냈다.


 



드라마 속에선 밉상 불륜남이지만, 현실 속에서 배우 정상훈은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멋진 남자’였다. 예능에서처럼 재밌고 호탕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이끄는가 하면, 연기에 대해서는 겸손한 배우였고, 가족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Q. 큰 사랑을 받았던 ‘품위있는 그녀’가 끝났다.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

A. 전혀 상상 못했다. 겨울에 찍은 드라마가 한여름에 방송되는 것부터 불안했다.(웃음) 그런데 정말 시청자 입장에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우선 백미경 작가 필력과 김윤철 PD 특유의 우아한 연출이 시청자 분들을 제대로 설득했다. 주조연 가리지 않고 구멍없는 연기력도 물론 한 몫 단단히 했다. 그 덕에 막장드라마가 아니라 ‘고퀄리티’ 드라마라고 평가해주시는 것 같다. 너무 감사하게도 미드 ‘위기의 주부들’에 비교를 해주시더라.

 
Q.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사실 기존의 이미지랑 조금 다르기에 많이 고민 됐을 것 같다.

A. 재석이는 재벌 3세에 누릴 거 다 누리고 사는 캐릭터다. 너무 다른 삶을 사는 인물이라 어떻게 표현할까가 고민이었다. 단순히 바람을 피우고 싶었던 감정을 끌어내는 것보다도 어디서부터 그 근본이 시작된 걸까를 탐구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별 대단한 탐구는 아니었다.(웃음) 그냥 어릴 때부터 재벌이니까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았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피아노 학원이나 태권도 학원 하나만 다닐 때, 얘는 두 개 다 할 수 있는 애였던 거다. 그래서 우아진이랑 성희(이태임)를 둘 다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Q. 안재석을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 있는가?

A. 왜 하나를 포기해야하는지 모르고 살았던 재석이가 자신이 잘못됐다고 깨닫는 장면이 있다. 딸 지후(이채미)가 아빠가 잘 못됐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동화책에 빗대어 이야기해주던 신이 있다. 그때 대본을 읽으면서 너무 철부지 같았다. 우리 애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조금 울었다. 그러면서 ‘나는 진짜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하고 결심했다.

 
Q.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희선이 ‘최고의 남자 파트너’라고 꼽았다. 이석훈, 고수, 권상우, 이동건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쳤다.(웃음)

A. 정말... 좋다.(웃음) 장담컨대 나는 향후 10년 간, 아니 앞으로도 김희선씨 같은 파트너 못 만날 거다. 빈말이 아니라, 촬영장 분위기를 이끄는 주연배우의 역량이 아주 뛰어나다. 보통은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까지는 잘 챙겨도 스태프들은 놓치기 쉽다. 그런데 그는 막내 스태프들부터 정말 잘 챙긴다. 그런 면모 하나하나가 왜 ‘톱스타’인지를 알려준다.


  



Q. 요즘 본인도 드라마, 영화 그리고 광고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톱스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무명도 길었었기에 더 남다를 것 같다.

A.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 보니까 대세는 맞나보다.(웃음) 요즘 바빠서 기분이 좋다. 많은 분들이 누릴 때 누리라고 하신다. 그런데 아무래도 조금 조심성이 있다. 어떻게 하면 계속 발을 땅에 붙이고 있을까를 고민한다. 아마 서서히 잘 돼서 그런 것 같다. 워낙 안 됐던 경험이 있으니까,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지내고 싶다.

 
Q.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웃음)

A. 집에서 조금 쉴 때, 포털에 ‘정상훈’을 검색하면 기사가 아주 우수수 쏟아진다. 사진까지 딱! 떠있고.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신다. 그리고 어려울 때부터 같이 고생한 와이프는 그 기쁨이 더한 것 같다. 얼마 전에 와이프와 ‘이제 이사 많이 안 다니고, 애들 초등학교 한 군데에서 쭉 보낼 수 있다’고 얘기했다. 너무 행복한 일이다. 와이프를 비롯해서, 나를 늪에서 건져주신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Q. 지금까지 올 수 있게끔 손 내밀어준 사람은 누가 있는가?

A. 정말 많다. 처음으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대학로로 이끌어 준 정성화 선배, 자유롭게 살던 나에게 “너 이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해준 김생민 선배, 공연 무대에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질 때 손을 뻗어 준 신동엽 선배, 연기자로서 시작할 수 있게끔 도와준 황정민 선배, 내게 함께 아이슬란드로 여행가자고 손 뻗어준 (조)정석이... 셀 수가 없다. 근데 이게 인생인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 결국 그들의 손길이 내게 돌아온다. 아주 작은 나비효과다.


Q. 그렇다면 10년 후 정상훈이 불러올 나비효과는 어떨지 생각해봤나?

A. 나는 참 느리게 가는 편이다. 물론 누구든 빨리 가고 싶어 한다. 근데 느린 것도 나름 매력이 있다. 지금 누군가는 내게 서두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가 않다. 요행이나 운으로는 짧게나마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꾸준한 노력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지 오래 걸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상훈’이라는 사람이 그나마 이 자리에 있는 건 사람 때문이다. 아마 내가 그들의 마음 속에 조금이나마 자국을 남겨서 그런 게 아닐까. 연기를 한다는 건 많은 분들의 가슴에 자국을 심는 일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최대한 많은 분들게 깊은 감동을 드리고 싶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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