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후원과 자원봉사의 진실과 폄하
보육원 운영비는 국가에서 1인당 60만 원가량 지원된다. 한 아동을 위해 시설 운영비, 인건비, 식비 등으로 사용하는 데 충분한 금액은 아니다. 따라서 보호아동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 살아간다. 진로를 위한 학원 등록비나 졸업식이나 생일날 주어지는 특별 용돈 같은 것은 없다.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여가활동비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은 보육원 환경이 저자가 성장한 1980년대 초반에 비해 너무나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풍족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 중에는, 아동학대가 있는 가정이나 부모의 실직과 사망으로 형편이 매우 어려운 가정을 보면 오히려 보육원 환경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혹자는 보육원의 아이들이 소년소녀가장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말도 한다.
모두의 삶이 힘들 수 있다. 아동은 처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자신들만의 고민과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보육원 아동과 다른 어려움에 처한 가정의 아동을 비교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단지 모든 아동이 건강하고 밝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소년소녀가장이든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동이든 언제나 보육원에 입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우리는 더욱 보육원 환경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 유엔총회의 아동권리에 대한 결의와 관련하여 어떤 변호사가 고아원은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고, 아동에게 해가 되며, 점차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시설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이나 선의의 방문이 아동의 시설 유입을 조장하는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수만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1년간 산 나의 집, 나의 고향과 같은 곳이 없어져야 한다니…. 내 집이 없어지면 나는 명절 때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 나를 키워준 보육사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오랫동안 어머니라고 부르며 우리를 아껴준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은 무엇이 잘못됐는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너무나 복잡해졌다.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보육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글은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한 듯이 추궁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또한 보육원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쳐서 내가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져 매우 불편했다. 보육원에서 성장했기에 내 삶이 더 불행해진 것인지 그렇다면 내가 과연 가정 같은 곳에서 성장하였다면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인지도 궁금했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이나 선의의 방문이 아동의 시설 유입을 조장한다는 글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선한 마음으로 보육원 아동에게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하는 행위가 오히려 아동에게 해를 끼친다고 말하다니….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보육원에서 성장할 때 자원봉사자가 오시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강제로 불러서 억지로 후원자와 사진을 찍게 하거나 불시에 집에 들어와서 청소할 때는 너무나 짜증이 났다. 머리를 잘라주는 분, 짜장면을 만들어주는 분이 오면 너무나 반가웠지만 다른 분들의 자원봉사는 너무나 불편했다.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는 어떻게 구분될까? 복지 전문가는 아니지만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 입장에서 감각적으로 느낀 것은 자원봉사자는 오셔서 청소나 학습지도 등 어떤 활동을 해 주시는 분이며 후원은 물품 후원, 봉사 후원, 재정 후원 등을 아울러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원봉사도 후원의 일부인 셈이다.
물품 후원으로 참 많은 종류의 물건이 보육원에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가전제품이며 학습에 필요한 문구며 라면을 비롯한 모든 음식물 등이 들어온다. 특히 가장 좋아한 후원 물품은 빵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팔지 못하는 빵을 시설에 가져다주었다. 평소 쉽게 먹지 못하는 빵이 들어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 기억이 있다. 가장 많이 들어온 것은 라면과 휴지였다. 라면과 휴지는 부피가 커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좋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원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시기는 명절 기간이다. 정치인부터 지자체 단체장, 기업체, 자원봉사 단체 등 수많은 곳에서 보육원에 방문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지. 우리는 무표정으로 자주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방문하였든지 그들의 의미 없는 말과 인사에 무심하게 대꾸하곤 했다. 헤어질 때마다 “다음에 또 올게”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형식적인 인사말이라고 생각했고 얼른 그들이 가길 진심으로 바랐다.
보육원에 방문했던 그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돌아갔을까?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간혹 자녀를 데리고 방문하는 분들도 있었다. 특히 같은 학교에서 다니는 친구의 뜻밖의 방문은 우리를 너무나 당혹스럽게 하였다. 예쁜 옷을 입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보육원에 온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들은 왜 자녀를 데리고 보육원에 방문했을까? 아이들에게 너보다 힘들게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과 부모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보육원을 일반 가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만약 여러분의 집에 모르는 사람이 자원봉사를 온다면 여러분의 심정은 어떨지 생각해 봐야 한다.
특별한 때만 으레 방문해 사진을 찍는 단체장들이나 자녀를 데리고 온 자원봉사자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후원한 것일까? 자신들의 의를 나타내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였을까?
가장 좋은 후원은 ‘가정 체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는 한 아동과 결연하여 가정에서 몇 주간 함께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정이 어떤 곳이지 알게 해주고 무엇보다 한 아이만을 위해 놀이동산에도 가고 서점에도 가고 개인 공간을 줌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모든 후원과 자원봉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서두에 언급했든 보육원에는 운영비가 넉넉하지 않다. 여러 기부 단체와 봉사 단체의 후원 없이는 현재 보육원의 운영이 너무나 어려운 시스템이다. 일반 가정처럼 넉넉하게 제공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만족할 정도의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따뜻하고 지속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후원에도 차별이 있다. 후원이라는 것은 주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장소가 달라진다. 시설장의 의지와 인품에 따라 후원하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진다. 후원을 위해 방문한 분께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연속적인 후원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단기로 끝날 수도 있다. 따라서 시설장의 능력에 따라 아동에게 제공되는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후원하는 이들의 홍보가 잘되는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선호도의 차이에 따라 보육원에 들어오는 후원이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결국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 참 안타깝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도대체 후원을 하라는 것인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후원하는 것이 보육원의 존속을 도와주는 것이고 후원을 안 하면 아이들이 결핍을 느끼며 살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후원을 하되 보육원 아이들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후원하고, 후원하는 시설에서 후원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지 주시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종종 후원금 착복과 종사자에게 업무 외 강제 노동 지시, 아동 노동 착취 등의 비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웃이 속속들이 알 수 없듯이 우리는 보육원에 발생하는 온갖 문제를 다 알 수는 없다. 여러분도 알다 싶지 보육원은 매우 폐쇄적인 공간이다. 어떤 후원이 들어오게 되더라도 소수의 직원이 관리하고 후원 물품은 의무적으로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2021년 시흥시 소재 인터넷커뮤니티 운영자 및 시민이 어느 아동보호시설의 이사장의 배임과 횡령 의혹과 관련하여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에 고발장을 접수한 것처럼, 우리가 후원하는 시설을 잘 지켜보아야 한다. 고발한 이들은 오랫동안 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후원금 등을 지원해 왔던 시민이었다. 그들이 진정한 보호아동의 보호자인 것이다.
체육교사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요 세 딸의 아버지로 사는 나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육원 퇴소 후, 그 어렵다는 자립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분명 아동기, 청소년기의 후원자님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때 후원해 주신 분들 중 몇 분은 현재도 어머니로 여기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후원자들의 도움 없이는 절대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보육원 후원은 지속적으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폐쇄된 곳에서 후원 물품의 쓰임이 다소 투명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후원을 해야 하며, 아울러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한 번 더 눈여겨보아야 한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시설에 대한 공허한 비판만으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설 자원봉사자나 방문객의 선의에 대한 폄하도 멈춰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시설에 들러 봉사하고 후원해야 한다. 보육원을 더 인간적인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과도한 비판보다는 우리의 자녀와 마찬가지로 보육원의 아이들도 이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성장해야 하는 귀한 존재로 인지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