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불행과 불쌍함을 넘어: 보육원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함께 세상을 맞이하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에게 버림받기도 한다. 또 다른 아이는 생명의 첫 숨을 쉬자마자 베이비 박스라는 상자에 넣어져 부모와 헤어진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아이들에게 "불쌍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그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던 부모와의 사랑 가득한 성장 과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나 역시 그런 안타까운 아이 중 하나였다. 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된 나는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찬가지로 "불쌍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나 역시 여전히 불쌍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불쌍‘이라는 주홍글씨는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결코 자신들이 '불쌍하다'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불행하다거나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삶의 행복은 물질, 관계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한 결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얼마나 만족하느냐,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을 비교했을 때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느냐이다. 그렇다면,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전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 중에는 보육원에서의 단체 생활을 만족하며, 오히려 부모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잔인한 학대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찾아 성장하는 아이들도 많다.
사실 나는 '불쌍하다'는 표현보다 '딱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느낀다. 소년소녀가장, 생계가 어려운 가정, 건강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면 '딱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 표현은 그들의 상황에 대한 나의 동정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불쌍하다'라는 표현의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령, 남을 무시하는 사람, 노약자석에 앉아서 척하는 이들, 갑질하는 상사, 혹은 베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돈이 많거나, 건강한 것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보육원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도 불행한 것은 아니며, 불쌍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딱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