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해 준 믿음

나를 지탱해준 믿음


내가 자랐던 기독교재단인 보육원에서는 신앙교육을 강조했다. 재단 설립의 목적에 맞게 세워진 보육원에서는 신앙 훈련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장래에 하나님을 믿는 자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도록 가르쳤다. 되돌아보면 어릴 때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에 예수님의 부활과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했던 일들은 매우 뜻깊은 기억으로 남는다.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 보육원 어린 시절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는 주일이 되면 주일예배의 일환으로 보육사님들이 아이들 앞에서 율동을 하며 직접 설교도 해주셨다. 평소 늘 보아오던 보육사님들과 아이들이었기에 주일예배라고해서, 성경공부를 한다고 해서 크게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평소에는 엄격한 보육사님들이 찬송가도 불러 주시고 율동도 하시니 새롭게 느껴지고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주일 오후에 열린 예배는 주로 보육원 외부 손님들과 함께했다. 평소 보육원에 관심을 가진 시설 밖의 전도사님들과 장로님들이 후원과 봉사 차원에서 설교를 해주셨다. 사실 어린 나이에 그 설교를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매우 어려웠고 설교 시간도 오전 예배보다 훨씬 더 길었다. 3 당시 아이들은 믿음이나 신앙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성경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여러모로 와 닿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보육원을 퇴소한 후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여러 가지로 보육원의 현실과 괴리가 되어 있어서였는지,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모두가 따분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육원의 가장 큰 명절 준비


성탄절은 우리 모두에게 최대의 명절이었다. 아이들과 똘똘 뭉쳐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다 함께 기뻐했다. 그 시간이 더욱 즐거웠던 이유는 보육원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귀여운 아가들의 깜찍한 율동, 초등부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댄스 공연, 중등부 아이들의 연극 공연, 어른들의 합창 공연 등 프로그램도 다채로웠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큰 편이라 연극을 할 때 주로 예수님의 역할을 맡았다. 과연 내가 자격이 될까 생각도 들었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일이 재미가 있어서 연극을 지도하는 보육사님이 무서워도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연극 한편을 무대에 올리기 까지 몇 주 동안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연극연습은 혈기 왕성한 아이들이 모이다 보니 서로 싸우기도 하고 이성 간 좋은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보육원의 중 고등학생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캐롤송을 부르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리는 행사를 했다. 합창단이 방문을 하면 현금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보육원 생활이 때로는 고단하고 힘들어도 성탄절만큼은 모두가 환하게 웃으면서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부활절과 추수 감사절 주간에는 중 고등학생들의 특별한 기도회가 열렸다. 기도회에서는 보육사님이 교대로 사회를 보면서 아이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우리의 고민과 걱정에 관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저녁 아홉 시부터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기도회는 처음에는 참으로 고역스러웠다.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예배당에 모여 기도를 드렸다. 심지어 기도 중에는 몰래 조는 친구들도 있었다.


애써 진지하게 마음을 먹고 기도에 집중하려 해도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서로를 놀려가며 웃곤 했다. 친구들의 장난에 나는 금새 평정심을 잃고 딴 짓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에 나는 가장 많이 기도했고, 그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다양한 신앙활동을 경험했던 청소년 시절


성탄절이나 부활절, 추수감사절 말고도 보육원에서는 특별한 사건들이 종종 일어났다. 외부 사람들의 방문하게 되면 아이들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보육원을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방문할 때면 교회에서 배운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개인 또는 팀으로 연극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면서 즐거움을 드릴 수 있었다.


간혹 다른 교회의 학생회에서도 보육원에 방문했다. 학생들과 어울려 함께 농구도 하고 레크레이션도 하며 친해지기도 했다. 매번 똑같이 시설 안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이렇게 외부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일은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고 유쾌하고 설렜다. 반대로 보육원 아이들이 외부 교회로 방문하기도 했다. 보육원 인근의 교회에서 행사가 열리면 우리들은 그곳에 가서 다른 아이들의 공연을 보았다. 보육원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자라는 평범한 아이들의 발표를 보면서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좀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교회에서는 여름 수련회도 열렸다. 여름이면 한적한 해변에 있는 교회로 서른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수련회를 떠나는데, 그곳에서 직접 텐트도 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생활하고 밤늦게까지 예배드렸다. 교회를 떠나 낯선 환경에서 기도를 하다 보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고 자연이 주는 평안함도 경험할 수 있었다.



기도를 통해 형성된 나의 믿음


나의 믿음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신앙생활을 위한 모든 활동들을 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떤 행사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특히 보육사님들이 열정적으로 주도하셨던 신앙훈련이 많이 기억이 난다. 중학교 시절 믿음이 있어 기도하기 보다는 기도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간절함이 생겨났다.

나에게 왜 이러한 시련이 찾아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동생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기도를 통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역 교회연합 선교단의 리더 역할을 맡았다. 일반 교회에서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찬양으로 전도를 하는 단체였다. 다들 교회에서 노래를 잘 하고 믿음이 좋은 친구들이 모인 자랑스러운 단체였다. 선교단 찬양집회 연습을 위해 장소를 빌리고 악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를 통해 믿음의 길만의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을 해서 고교 졸업 후에는 신학대에 입학했다.



보육원 퇴소 후 새롭게 시작된 찬양인도


나는 다섯 살 때에 보육원에 들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합격한 해에 보육원을 나왔다. 이십여 년 넘게 보육원 안에 있는 교회에 나갔는데, 보육원을 나온 뒤에 어느 교회에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고등학교 때 알고 지난 찬양단 선배의 요청으로 그 선배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 선배는 교회 목사님이 되었는데 나는 오후 예배의 찬양을 부탁받아 순종하는 마음으로 찬양인도를 하였다. 이를 계기로 다른 일반 교회에서도 찬양인도를 하며 집사님들과도 친분을 쌓고 나도 점차 인정을 받았다. 오후 예배뿐만 아니라 청년부 모임도 함께 하게 되었는데 보육원에서 싹틔운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 내 인생에 줄곧 함께한 것이다.


보육원 내 교회가 아닌 퇴소 이후 처음으로 갔던 교회에서 나는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믿음으로 살고자 했던 나의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주님이 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는 지금까지도 오후 예배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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