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배달의 미래, 기술이 아니라 공간이 결정한다.
인생 첫 중국, IT시선으로 보니 곱씹을게 많았던 즐거운 상해 여행기
칫솔을 깜빡했다! 상하이 여행 첫날밤에…
호텔 근처 편의점까지 나가기 귀찮아서 상해에서 박사 과정을 준비하는 현지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그냥 배달시켜"라고 했다. 앱 켜고 칫솔 검색했더니 호텔 근처 편의점보다 쌌다. 심지어 칫솔 하나만도 배달이 되더라.
몇 시간쯤 지났을까, 객실 전화가 울렸다. 배달이 왔다고!
문을 열었더니 사람이 아니었고 무릎 높이의 깜찍한 중절모를 쓴 흰 로봇이 복도에 서 있었다. 내가 칫솔을 꺼내자, 로봇은 볼일 다 끝났다는 듯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오… 감탄하며 나는 로봇의 뒷모습을 복잡 미묘하게 쳐다봤던 기억이다.
이렇게 좋은 게 왜 서울엔 없지…!
그러고 보니 여행 준비를 하면서 현지인 친구가 ‘상하이는 버블티도 드론으로 배달된다고, 신기하지 않냐’ 말했던 게 생각나서 다음날 바로 드론 배달을 알아봤다.
며칠 돌아다니면서 슬슬 로봇 배달이 가능한 호텔이 있고, 아닌 곳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로봇에 물건을 틈틈이 넣어주는 건 결국 호텔 직원이었다는 비하인드도 알았다.
드론은 더했다. 찾아보니 드론 배달은 지정된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 등 안에서만 가능했다. 나는 굳이 드론 배달이 된다는 푸단대학까지 일정을 바꿔서 찾아갔다. 드론 배달존 앞에 도착했더니 오늘은 운행을 안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냥 돌아왔지만…
다소 아쉬웠던 드론 배달 현황은 중국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미국도 도심 상업 배포는 아직이다. 드론은 도심에서 착륙 공간 부족과 안전 문제 때문에 오히려 장애물이 적은 교외나 농촌에서 더 빠르게 퍼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좋은 기술인 건 맞았는데 아직 어딘가 베타 버전 같은 느낌이다.
미국에서도 배달 로봇은 주로 대학 캠퍼스에서 운영되며, 캠퍼스 밖에서는 일부 주거 단지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 로봇을 도시에 풀어놓으면 연석을 못 올라가고, 경사로 앞에서 멈추고, 스쿠터 한 대에 가로막혀 꼼짝을 못 한다고 한다. ACM 논문에는 신호등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로봇 옆에서 지나가던 보행자가 대신 눌러주는 장면이 나온다. (로봇을 도와준 사람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로봇이든 드론이든, 패턴은 같다. 통제된 환경에서는 작동하고, 실제 도시에서는 막힌다. 도시가 로봇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으니까.
대표적인 게 네이버 사옥 1784다. 처음 지을 때부터 로봇의 동선을 설계에 넣었다.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부터 옥상까지 연결돼 있고, 건물 전체가 디지털 트윈으로 복제돼 로봇이 공간을 실시간으로 인식한다. '루키'라는 로봇이 커피와 택배를 매일 배달한다. 신기한 일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다. 싱가포르, 두바이, 중국의 일부 스마트 빌딩들도 같은 방식이다. 처음 설계할 때부터 로봇을 넣었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기존 도시에서 로봇이 캠퍼스 밖을 못 나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처음부터 로봇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공간들이니까. 로봇 배달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공간 설계가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서울도 나의 가시거리에 변화가 없었을 뿐 상해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빌리티는 요기요와 함께 인천 송도에서 시작해 강남·서초로 배달 로봇 영역을 넓혔고, 일부 래미안 아파트에서는 공동현관부터 집 앞까지 door-to-door 배달이 시작됐다. 근데 배달 반경은 아직 1.2km로 제한돼 있고, 테헤란로에서 연동된 건물은 6곳뿐이다. 실내 진입을 위해 자동문과 엘리베이터 연동이 필수인데, 그게 안 된 건물이 훨씬 많다.
상하이 호텔 로봇이 자꾸 생각나는 건 신기해서가 아니었다. 여행 중 어느 날 나는 그 로봇이랑 좁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로봇은 좁은 와중에도 정중앙에 떡하니 서 있었고, 결국 내가 구석으로 비켜줬다. 내가 왜 로봇한테 자리를 양보하고 있지? 웃기면서도 이러나저러나, 누군가 이 공간에 로봇을 들일 준비를 먼저 했다는 것은 사실일 테다.
신축 건물에 로봇 동선을 넣을지 말지, 엘리베이터 연동을 기본으로 할지 말지. 그 결정들이 쌓이면 10년 후 배달 풍경은 달라질 것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한동안은, 우리가 구석으로 비켜줘야 할 수도 있다.
그게 감수할 만한 불편함인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고한 콘텐츠
ACM Transactions on Human-Robot Interaction (2024). Understanding the Interaction between Delivery Robots and Other Road and Sidewalk Users: A Study of User-generated Online Videos.
플래텀 (2024). 요기요·뉴빌리티, 서초구서 아파트 '현관 앞' 로봇 배달 시작.
뉴빌리티, 네이버, 네이버 LABS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