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Dec 25. 2023

[D-7] 특별하고 평범한 크리스마스

359번째 글

크리스마스가 점점 특별해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밖에 나가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그다지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내 주변의 분위기가 변한 탓이 클 것이다.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 아침을 선물과 함께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또 예전에는 연말마다 꼬박꼬박 트리를 만들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트리를 만들지 않는다. 창고 정리를 하면서 낡은 트리를 버렸기 때문이다. 트리를 만들지 않게 되면서 크리스마스 리스나 솔방울 장식, 호두까기 병정 인형 같은 장식품들도 꺼내 놓지 않게 되었다.


또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를 '패밀리 나잇'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식사는 꼭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먹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웬만해서는 모이려고 하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 그렇게 빠지는 사람이 생겨도 다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또 예전에는 가끔씩은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크리스마스 기념 발레 공연 같은 것들을 보러 가기도 했었는데 이젠 나가면 사람도 많고 고생이라는 생각에 대체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점점 우리 집의 크리스마스가 평범해지고 있다. 이 변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더 편한 부분도 많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거나 장식으로 집을 꾸미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매년 해왔던 일이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것일 뿐, 사실은 꼭 해야 되는 건 아니기도 하고. 물론 일 년에 한 번 정도니까 할 만하기는 하지만 귀찮은 일인 것은 맞다. 또 12월 말의 추위를 맞으며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나온 인파 속에 끼어 있는 것보다는 집에서 편안하고 여유롭게 보내는 것이 더 우리 가족 스타일에 맞는 것 같다. 가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도 좋고, 번잡스럽지도 않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긴 한다. 집 안을 둘러보았을 때 문득 트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아쉽다. 예전처럼 집에 들어서자마자 트리나 여러 장식이 눈에 띄어서 연말 분위기가 확실히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되살리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다. 새 트리를 사 오거나 창고에서 리스와 장식들을 꺼내기에는 내가 조금 게으르다. 귀찮은 마음이 아쉬운 마음을 덮는다고나 할까. 그리고 지금의 편안하고 평범한 분위기가 싫은 건 아니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를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보낼 필요는 없다. 나는 어린 시절 보냈던 특별한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지금의 평범한 크리스마스도 좋다. 왜냐하면 이 날을 따스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건 트리나 장식, 파티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곁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매년 크리스마스는 특별해진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든 아니든, 이 사람들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해 준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다른 일들로 바빠서 얼굴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아침 잊지 않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메시지로 보내 주는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나의 크리스마스는 특별하고 또 아름답다.


소중한 건 분위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그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크리스마스 당일 오전을 행복하고 특별하게 보내고 있다.



/
2023년 12월 25일,
소파에 엎드려 캐럴 음악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lasse bergqvist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8] 아껴 두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