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번째 글
나는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영화나 음악을 선뜻 틀어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영화 추천을 받았을 때, 그리고 내가 봐도 정말로 내가 그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망설인다. 이 작품은 완벽한 상황에서 온전히 집중해서 봐야 할 것 같아서다. 아무것도 모르고 첫 번째로 보는 경험이 늘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 경험을 망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보거나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봐서 몰입하지 못하면 아쉬우니까. 그래서 나는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가 으레 잊어버리기도 하고, 보지 못한 채로 묵혀 두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물건을 선물 받았을 때도 오래 묵혀 두는 편이다. 그 선물이 너무 소중한 탓에 실제로 사용하지를 못한다. 쓰다가 닳아버릴까 봐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선물로 받은 게 닳는 것 자체도 마음이 아프고 오래 써서 아예 낡아버리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낡은 선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다. 새 물건은 계속 갖고 있어도 짐이 되지 않지만, 쓰다가 너무 닳아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된 물건은 애매하다. 선물로 받은 물건이니 버리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쓰지도 못할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도 낭비인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선물을 실사용하지는 못하고 보관만 해 두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아예 못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 아끼다가 결국 잊어버리는 경우. 아니면 보관하던 선물이 너무 오래되어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닳아 버리는 경우. 예전에 파우치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파우치를 사용하지 않고 서랍에 고이 간직해 두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서랍을 정리하다가 다시 꺼내 보았는데, 파우치의 고무 부분이 오래되어 끈적끈적해져 있었다. 그 파우치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못쓰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그때 차라리 사용할걸, 하고 후회했었다. 어차피 써도 닳고 안 써도 닳는다면, 차라리 사용을 하는 편이 그걸 준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물건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쓰면 닳는다. 하지만 아껴도 닳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영화라면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지 말고 일단 보고 나서 좋아하든 아쉬워하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끼느라 좋은 영화를 볼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조금 덜 아끼는 사람, 조금 덜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고 선뜻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