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번째 글
지금까지 들은 노래 중에서 나의 내면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내 마음속을 시각화해 나타낸 것만 같다. 나의 비대한 자아, 나의 자만심, 나밖에 모르는 이기심, 나를 향한 자기혐오, 과도한 자기애, 쉽게 상처받는 연약함, 수도 없이 날 찾아오는 질문들, 의심들……. 그 모든 조각난 '나'들이 나를 넘치도록 채우고 있다. 그래서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없고 관계를 맺기 어렵다. 결국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지 못하고, 의지가 되기는커녕 상처를 주고야 만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중에서.
나는 이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싶다. 씻어버리고 싶다. 홍수가 나서 토사가 쓸려 내려가듯이, 내 마음속에 잡다하게 쌓인 것들을 쏟아내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나 자신으로 충만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내 안에는 진정한 내가 없고 나다운 것을 찾을 수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만 같고, 나에 대해 알아가고 나 자신을 찾아내서 그걸 마음에 가득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두 가지는 얼핏 모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를 비우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나를 채우고 싶어 한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비우고 싶으면 채워서는 안 되고, 채우고 싶으면 비워서는 안 되니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가지는 결국 같은 말이다. 비운다는 것과 채운다는 건.
예전에 어느 미니멀리스트 인테리어 전문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읽었다. 집은 비울수록 공간으로 가득 찬다는 말. 여백이란 텅 빈 공간이 아니고 여유를 채워 넣은 공간이라고, 그래서 집을 비우면 비울수록 여유가 집을 가득 채우게 된다고 한다. 이건 나의 마음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내가 나를 비우면 비울수록 나는 나로 충만해진다. 비워낸 그 자리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 물건이 잔뜩 쌓인 복잡한 창고를 정리하면 내가 찾던 물건이 나오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나를 비우고 씻어내면서 나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The less I have, the more I am. 내가 끌어안고 있던 수많은 '나'들을 내려놓자 나는 자유로워졌다. 아직도 비울 부분이 많지만, 다시 말해 채울 부분이 많지만, 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노력하고 있고, 많이 나아졌다.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원동력으로 나를 더 비우고 더 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