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번째 글
<삼국지>에는 '천하삼분지계'라는 개념이 나온다. 중국 대륙을 셋으로 나눠, 세 나라가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면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이다. 어느 한 나라가 강해지면 다른 두 나라가 손을 잡고 막아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누구 하나가 크게 강해져 세력을 쌓기도 어려워지고.
그동안 나는 계속해서 내 삶의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또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고민해 왔다. 어떤 가치를 내 삶의 모토로 삼아야 하는지, 어떤 신념을 갖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잘' 살 수 있는지를 고심해 왔던 거다. 그러다 나는 <삼국지>에서처럼, 균형을 위해서는 어떤 한 가지 가치만을 안고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고 해도 잘못하다간 너무 과해지거나 맹신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정적인 구도를 갖추려면 세 가지 가치가 필요하다. 그 세 가지 가치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어느 하나가 너무 과도하게 발현되지 못하도록 균형을 잡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나의 고민은 이 세 가지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내는 일이 되었다. 고민 끝에 나는 이 세 가지 가치를 떠올려 냈다. 바로 연약함(vulnerability), 용기(courage), 지혜(wisdom)이다. 나는 이걸 VCW라고 줄여 부르고 있다.
연약함(vulnerability)은 나의 약점을 내가 아는 것,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언제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되는지, 어떨 때 상처를 받는지,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결함이 있는지를 알아내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해질 수도 없으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이렇게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데에는 두 번째 가치인 용기(courage)가 필요하다. 용기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과정이다. 내가 현재 취약해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 내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감수할 수 있는 것, 내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것, 그런 부분을 용기가 담당하고 있다. 연약함이 과해지면 자기혐오나 과도한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그 부분을 막아 주는 것이 바로 용기다. 마찬가지로 용기가 과해지면 만용이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걸 보완해 주는 것이 연약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wisdom)가 있다. 지혜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 나의 연약함을 탐색하는 데에, 또 언제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에, 연약함과 용기를 조절하는 데에 이 지혜가 사용된다. 연약함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해 주고, 용기가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면, 지혜는 어느 쪽으로 갈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 만약 지혜가 너무 커져 자만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연약함과 용기가 결합해 그러지 않도록 막아 주고.
이 세 가지 가치, 연약함과 용기와 지혜가 나의 마음속에서 함께 작용할 때 나의 인생은 비로소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너무 기울어지지도 않고, 너무 고요해지지도 않고, 다급하지도 않고, 정체되지도 않으면서, 나의 인생에 안정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내가 나의 연약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내며 현명하게 잘해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