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게임처럼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한 이후로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게임 삼매경입니다. 한국의 친구들은 두 달짜리 방학 중인데 이곳 푸에르토리코의 학교는 다음 주 학기가 시작하니 우리 아이들은 방학이 없어서 억울하답니다. 그런 연유로 매일 바깥 놀이와 게임만 하고 책 읽기나 공부는 하나도 안 해도 되는 진정한 의미의 10일간의 방학을 갖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두 시간, 저녁에 자기 전에 두 시간... 그렇게 밤낮이 바뀐 한국에 있는 친구와 접속해서 매일 게임 세상에서 만나 함께 게임을 합니다.
게임 세상의 아이들은 무척 신이 납니다. 게임 속 세상에서는 캐릭터가 죽어도 별일이 아닙니다. 이런저런 아이템 득탬을 하면 신이 나지만 아니어도 그렇게 심각하게 좌절하진 않습니다. 물론 심각하게 기쁘고 심각하게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게임 속 현실이 실제만큼 중요하게 여겨질 정도로 빠져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게임에 몰입하여 게임 캐릭터가 내가 되어버리고 캐릭터의 경험이 내 삶의 경험의 전부가 되어버릴 때 온갖 감정이 요동칩니다. 허우적거리는 손가락과 긴장한 표정과 터져 나오는 감탄사가 지금 이 순간 아이가 완전히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게임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게임 속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게임 속 캐릭터가 죽을 때 현실의 나도 죽는다치면 지금 하는 이 게임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게임에서 얻고 잃는 것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때 게임 폐인이 나타납니다. 게임의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싸움이 일어나고 게임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집니다.
삶도 마찬가지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체로서의 캐릭터에 몰입해서 살아갑니다. 이 육체가 득탬할 때 기쁘고 상대와 비교해서 질 때 좌절하고 이 육체가 죽을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우리는 거의 매 순간 완전히 이 삶의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서 살아갑니다. 한 번도 삶 밖의 세상을 생각해 보지도, 느껴보지도 않고 살아가다 보니 삶의 문제가 온통 심각하게 느껴지는 건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쓴 글에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통의 자기소개서에 나올 법한 내용으로 이름, 직업, 가족 관계, 취미, 성격 등 과거와 미래의 내용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입니다. 내 삶의 궤적을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의 나는 좀 더 궁극적이고 변하지 않는 차원의 늘 현재 이 순간에 깨어있는 존재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생각과 감정과 감각 너머의 깊은 차원의 고요한 나를 가리키며, 단 한 번도 지금 이 순간을 떠난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변하지 않는 차원의 열린 의식이자 알아차림입니다.
이런 면에서 삶 역시 게임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육체로서의 정체성이 게임 캐릭터라면 근본적인 본성으로서의 나는 게임 밖 현실의 나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삶도 게임처럼 살아가면 가볍고 심지어 더 즐겁단 생각입니다. 이 육체로서의 캐릭터 너머의 나의 본성의 느낌을 알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본성에서 드러나는 온전함과 평화와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느끼면서 지금 이 열린 의식 앞에 앞에 펼쳐지는 삶의 경험이라는 게임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는 삶에서는 게임에서와 같이 실패도 즐길 수 있는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여 집입니다. 성공의 경험이 신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기에 가볍게 즐깁니다. 득탬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목 매달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것이 얻어지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가볍게 다음번 퀘스트에 도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을 받아들이고 모든 생사고락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면서도 내 본성, 나의 본캐에서 흘러나오는 나오는 평화와 안온함이 있음에 안심합니다. 심지어 게임에 완전히 몰입해 온갖 희로애락에 휩싸여 본캐의 존재를 완전히 잊은 순간에 이마저도 사실은 본캐가 게임을 하고 있음을 알기에 안심합니다.
게임에 몰입해 즐거운 아이들을 지켜보다 삶도 게임이란 말이 떠올라 이 글을 씁니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이 세상에 소풍 왔으니 실컷 놀다 가면 되겠다 합니다. 그러니결국 삶은 계란... 이 아니라 게임인 겝니다. 끝나기 전까지 가볍게 실컷 놀다 가면 될 게임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