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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Jan 15. 2024

법륜스님의 가르침

법륜스님께 얻은 수행의 방향

지난 글 <워싱턴 정토회와의 인연>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법륜 스님께서 워싱턴 디씨 지역에 즉문즉설을 오실 때가 되면 훨씬 전부터 워싱턴 정토회 전체가 들썩입니다.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책임이 나눠지고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일을 수행의 기회로 삼으며 자비와 봉사의 실천을 중시하는 정토회답게 워싱턴 정토회를 이끄는 실무자들의 지도하에 봉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버지니아의 한 성당에서 열린 즉문즉설 행사 진행 보조로서의 봉사자 역할을 맡은 저는 분주할 내일을 위해 전날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온몸에 에너지가 흐르며 잠이 오질 않는 겁니다.


그렇게 생생히 깨어있는 상태가 직장에서도 하루 종일 이어지더나 밤늦게까지 이어진 즉문즉설 현장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현존하며 깨어있을 때는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하게 보입니다.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하나에서 다음 행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무사히 즉문즉설 진행을 마치고 나누기를 하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때쯤에는 제 마음을 맴돌고 있던 수행에 대한 의문도 잊힌 상태였습니다. 질문이 있었다는 생각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Lord of Lutheran Church, 출처: Flikr


질문이 다시 떠오른 것은 다음 날이었습니다. 법륜 스님께서 워싱턴 지부의 정토회원들과 함께 법당에서 식사를 하며 간소한 대담을 진행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이곳에서 답을 얻게 되겠구나.


스님과 직접 함께하는 법회는 특별했습니다. 워싱턴 정토회의 법당이 오랜만에 정토회원들로 가득 찼습니다. 법륜 스님의 지도하에 경건하게 부처님 전에 의례식을 올렸습니다. 식을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랗고 둥그렇게 둘러앉았을 때 스님께서 자유롭게 궁금한 것을 물으시라 하셨습니다. 몇몇 도반 분들의 질문이 끝나고 저는 그때까지 제 머리를 꽉 채우고 있던 질문을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었습니다.


"스님, 저는 몇 년 전에 마음이 확 열리는 체험을 한 이후로 약 1년 전부터 정토회를 우연히 알게 되어 다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고 그냥 다니는 느낌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계속 다닐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수행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최근에 이 부분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노력이 내려놓아지고 애쓰지 않고 추구하는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더 생생하게 깨어있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법문을 들으면 수행에서 노력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으면서도 또 제 경험으로는 애쓰지 않는 방향이 맞는 것도 같아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이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마음을 크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저는 그 답변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로 그 답변의 깊이를 더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수행의 길은 체험과 이해가 함께 가야 합니다. 둘 중 하나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이해를 먼저 한 사람은 체험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체험을 먼저 한 사람은 이해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선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이해만 한 사람은 체험이 부족해서 실제 삶이 잘 변하지 않습니다. 체험만 한 사람은 내가 체험한 것이 다인 줄 알고 나의 경험만 옳고 다른 길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지금 질문자 역시 그런 상태인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진정한 이해가 일어났을 때는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지금 질문하는 내용을 보니 질문자는 혹시 나의 경험만 옳다고 생각하는 그런 상태인 건 아닙니까? 그래서 체험을 했으면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님의 말씀이 정곡을 찔렀습니다. 아... 그렇구나. 나의 지금 상태가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을 수 있겠구나. 그동안 수행하는 방식에 대해 분별하는 마음을 내고 있었구나. 의문이 탁 내려 놓아졌습니다. 다시 열린 마음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그저 삶에 맡기는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후 스님께서 법회를 마치시면서 따듯하게 손을 잡아 주시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라고 하시자 몸의 에너지가 차분해지더니 고요하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불교 대학에 등록을 합니다. 1년 남짓 불교 대학을 다니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그 사이 남편이 새 사업에 뛰어들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지만 불교 대학을 끝까지 마칠 수 있는 여건이 계속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때 시작한 희망 편지 번역 봉사 역시 일과 수행을 하나로 보아라는 가르침을 따라 워싱턴 디씨를 떠나기 직전까지 소임을 다 하게 됩니다. 삶이 주는 모든 것을 수행 삼으며 흘렀습니다.


그렇게 법륜 스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이 제 가슴에 깊이 새겨진 채로 2년 남짓한 정토회와의 인연이 마무리 지어집니다.


"내 경험과 생각이 다인 줄 알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법륜스님과 워싱턴 정토회 법당에서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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