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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제이 Sep 22. 2023

나의 친구들아 잘 지내니

나는 동네 친구를 만들려다가 영혼이 위험할 뻔했어






서울만 안 가면 삶의 질이 높은 곳, 이곳 동탄에 사는 것은 꽤 만족스럽지만 나는 동네 친구가 없어서 종종 서울 생각이 난다.


해가 저물면 어둠의 세기나 달빛의 조도가 서울과 달라 이곳이 원래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화성시의 논밭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수많은 아파트 불빛을 모두 모아도 밤의 어둠을 물리치지 못하는 작은 도시지만,

이 도시에서 가장 밝은 곳, 초역세권이자 슬리퍼를 신고 백화점에 갈 수 있는 편리한 곳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무인도에 고립된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런 외로움이 들 때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공감되는 연결고리가 없고, 가치관 차이도 컸다.

풍부한 리액션이 집안 내력이라 맞장구를 잘 쳐주고, 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인데 사실은 피로감이 상당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만나면, 사람을 만나기 싫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나가면,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얄미운 나의 마음 어쩔까.

아이유의 스물셋 노래가사처럼 서른아홉의 앙탈이 아니다.


오늘은 사람을 만나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단전에서부터 탄식이 나왔다.

"아, 하늘은 이렇게 예쁜데 외롭다 외로워"


외로움인지 그리움인지에 사무쳐 궁상떨고 싶은 날,

나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지금보다 더 젊었던 나의 찬란한 날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Dear 나의 오랜 벗들아.


잘 지내니. 나는 이곳에 살면서 너희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가장 찬란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단다.


너희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원래 이상한 애’로 알아주었고,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을 알게 해 주었지.

우리 관계에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고, 친할수록 배려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건 너희들이야.


여권을 만들고부터 내가 처음 가보는 세상을 함께 했었지. 그곳에서 처음 보고 느낀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게 되었어.

모든 게 처음인 나의 두 살 조카가 별것도 아닌걸 보고서 "우와!!" 놀라 감탄할 때마다 ‘너는 매일 해외여행을 하고 있구나. 나 그 기분 알아’ 우리가 함께 했던 여행의 기분이 생각나곤 해.


나에게는 당장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더라.

집구석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오늘은 당근 동네생활 모임에서 글쓰기를 무료로 가르쳐 준다길래 나가보았어.

그곳에 가면 나처럼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공감대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모임을 만든 글쓰기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윤회'를 믿는다는 말로 시작하더라. 죽음 이후에도 생이 거듭된다며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왜 이렇게 영혼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지 귀에 거슬렸어.

글쓰기 주제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현실적인 사건으로 답을 말하는데, 선생님은 두려움과 우리의  영혼이 큰 관련이 있다며 비슷한 말만 계속하더라. 마치 답을 정해놓은 것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야.

에라이!...


선생님이 도를 아시냐고 묻기 전에 끝나길 바랐는데, 학생들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어.

두 시간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 마지막에 각자 소감을 말할 때 알게 된 건데, 스물두 살 남학생은 내가 말한 ‘시험관’이 중간고사 개념의 ‘시험’으로 알아들었더라. 두 시간 동안 거의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었는데 말이야.

나에게 그게 어떤 시험이냐고 묻길래 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버려서 선생님이 여기서 수업 끝내자고 중재해 주셨어.

내가 그동안 말했던 단어를 조합해서 그냥 “물려받을 유산이 없어서 난임병원 입사 시험을 본다'라고 말해줄걸 그랬네.


어째튼 그 모임은 엉망진창이였고, 동네 친구 만들려다가 내 영혼이 위험 뻔했어.

사람을 만나도 소통의 부재로 외로움이 더 커지기만 하는구나.

이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글쓰기의 테크닉은 못 배우고 왔지만 너희들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길 수 있어서 기쁘다. 만약 전생에 관심이 있다면 이 글쓰기 모임을 추천해 줄게. 이번 생이 왜 힘든지,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지 알 수도 있을 거야.



나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추억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서 오류가 커지고 있어.

내가 반짝반짝 빛났던 시절에(오류 포함)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함께 저지른 일들은 모두 미래에 도움이 되었다고 알려주고 싶어. 돈이 없어도 여행은 원래 무리해서 가는 거라는 우리의 칙이 맞았어. 평생 남을 추억은 바로 그 일들이었네.


우리의 시간은 모두 다르게 흘러가고 있지만 살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결국 만나게 되겠지.

그때 우리는 오로라를 보러 떠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회비 잘 내자.



- 도를 아는 사람을 만났던 날,

   우리의 시절을 나눠 가진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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