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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마케터 Feb 15. 2024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다 괜찮다

40대가 되어서도 부모 곁에서 사는 나는 매순간 비극을 맞이한다. 여전히 좋은 딸인 척 하는 나에게 그 순간들이 버겁다. 집에 돌아와 온통 내 눈치를 보는 엄마를 보면 다시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엄마의 일탈


한때 꽤나 돈을 잘 벌던 엄마는 그 씀씀이를 줄이는데 애를 먹었다. 엄마가 그렇게 된 데에는 10여 년 전 시작된 병이 이유였다. 엄마는 씀씀이가 컸다. 그 당시에는.


엄마의 일탈은 식품을 사거나 당신의 옷을 구매하는 일이었다. 엄마의 옷장에는 꺼내보지도 못한 옷들이 가득하다. 오래 전 옷이라 촌스럽기도 해서 정리하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중에는 한 번도 안 입은 옷들도 많고 내가 사준 옷들도 많아서 어느 때에는 어떤 옷이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다.


물론 10년 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점차 옷 사는 일을 줄였고 지금은 그 정도로 옷이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도 때때로 쇼핑을 가면 내가 옷을 사주기 때문에 옷이 적은 편은 아니다.



엄마는 여전히 쇼핑중


또 다른 씀씀이는 여전히 줄이지 못했다. 생필품을 사는 일이다. 우리집 베란다에는 라면 창고라고 할 정도로 라면이 가득차 있다.


돈이 없다고 늘 울상을 짓는 엄마는 매일 이마트에 간다. 엄마의 유일한 즐거움이 이마트 가는 일이다. 이전에는 쇼핑 갔다가 옷이 세일하면 어김없이 옷을 사들고 오곤 했다.


이젠 이마트에 매일 가서 계속 뭔가를 사온다. 그게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세일할 때 사두면 좋다는 이유지만. 베란다에 온갖 생필품으로 넘쳐난다.


거실에는 쌀집인가 생각할 정도로 쌀 포대가 잔뜩 쌓여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의 유일한 일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사기 때문에 아빠와 허구한날 싸우는 건 나조차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가가 오르다 보니 엄마의 생각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다고 하지 말고 그냥 필요할 때 사서 쓰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생각을 멈추고만 싶다.



너부터 행복해야지


주말에 지인을 만났다. 내곁에 한결같이 있어주는 그는 나와는 정말 안 맞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내게 "가족 이전에 너가 행복해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거야"라고 한다.


그의 말이 온전히 맞다.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는 내게 독립을 권했다. 너가 손을 떼면 어떻게든 살게 될 거란 소리다.


사실 그와 이런 이야기를 10년째 하고 있다. 매번 같은 말을 하는 그도 정말 답답할 노릇일 테고. 처음엔 "너가 좋은 사람, 좋은 딸이라 정말 다행이다"라고 했지만,


이제 그말은 절대 칭찬이 아닌 게 되었다. 내가 나를 갉아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나는 그냥 딱할 뿐이다. 그리고 나도 내가 딱하다.


2년 전쯤부터. 이 노력을, 이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선택한 가족에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 방책으로 결정사에도 가입한 것이었다.


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랑 그냥저량 결혼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결정사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잖아


회사에서 사람들이 보기엔 "뭐 부족한 게 있다고 여태 시집 안 가고 있냐"는 소리를 한다. 내 타들어가는 속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멀쩡하게 회사 다니고 말끔하게 잘 관리된 사람으로 살아가니까. 딱히 사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나는 온몸이 사연이다.


얼마 전에 나는 건강에 이상신호가 감지되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여기저기 나타난 것이다.


평소 식단 관리를 잘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내게 이런저런 건강 이상신호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버티고 버티고 속이 타들어가도 나는 혼자 "괜찮다"고 자신을 속여왔다. 하지만 내몸은 이미 망가지고 있었던 것.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최근 한 달 간은 허리를 피지 못한 채 겨우겨우 걸어다녔고 이젠 허리 외에도 몸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나를 방치하고 학대한 것은 아니었나 생각했다.


놓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 관리 방법은 "놓기"이다. 매일 매일 걱정을 털어버리는 것. 안 되면 말고, 혹은 어쩔 수 없고. 내가 다 책임질 필요도 없고. 책임지지도 못하고.


잊을 것 같으면 또 되뇌인다. 나는 할 만큼 하고 있어. 그만하면 됐다. 더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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