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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방랑자 May 01. 2024

안 사서 뒤쳐진다는 불안함

투자재가 사치재가 되어버린 세계

18세기, 유럽은 신대륙과 식민지를 통해서 부가 축적되기 시작했고, 인류 역사상 최고로 풍요로운 시기를 맞이하는 기점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유럽 국가들, 특히 영국의 경우 이런 부를 축적한 사람들 중에 어르신들이 많았고, 그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곤 했는데, 사실 이 지팡이의 원 목적은 말 그대로 거동이 불편한 것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지팡이를 든 신사 (출처: https://www.thetimelessgentleman.com)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부유한 어르신들의 이미지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부의 상징처럼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지팡이는 18~19세기 들어서 보행 보조기구가 아닌 사치품(!)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젊고 몸이 멀쩡하게 잘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으며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무기와 호신용으로도 쓰였는데, 그래서인지 가끔 영화에서는 지팡이가 달린 우산 또는 지팡이만으로 괴한을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그것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 킹스맨(Kingman)시리즈.


영화 킹스맨의 우산은 지팡이 > 우산 > 병기(!)까지 발전해 온 모습이다.


근데 영화는 애초에 비밀요원이라고 하지만 멀쩡한 일반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댕길 필요가 있나? 우산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정말 말 그대로 과시를 위한 사치품으로 변모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이 내용에 대해서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을 통해 비판한 예시이기도 한데, 바로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계급, 즉 유한 계급을 나타내는 물건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로 자기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 하기 위해 지팡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근데, 재미있게도 이런 이미지는 말 그대로 노동을 안해도 되는 계급이 아닌 그냥 노동을 해야함에도 부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쓰였던 것 같다. 이후에는 노동이고 자산이고 상관없이 외부로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서 사용되었던 현대의 외제차나 명품과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베블런 효과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는 위에서 얘기했던 소스타인 베블런이 주창한 이론으로, 이런 과시욕이 퍼질수록 낮은 가격의 상품을 소비하지 않으며, 남들과 대비되어 우월감을 얻기 위하여 고가의 사치재를 소비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 (출처: 조지 이스트만 뮤지엄)


다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냥 상류층에서 끝나면 지가 돈있다는데 사던 말던 뭔 상관이야? 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베블런 효과는 계층과 상관없이 나의 부와 지위를 소유한 것으로 표현하게 되는 욕구에 초점을 둔 것 같고, 그것이 생산을 위한 건강한 소비가 아닌, 말 그대로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진정한 생산성에는 크게 도움이 안되는 것을 비판하려고 이 이론을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베블런은 원래 노르웨이계 이민자지만, 그의 가족들이 미국으로 넘어와서 투기꾼, 사기꾼, 사채업자 등으로 인해 불로소득자에 대한 경계 및 분노를 바탕으로 이런 비판적 논지를 주장하게 되었는데, 지금 보면 대단히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잘 맞아떨어진 느낌이다.



투자재로의 과시욕 이동

과소비를 해도 사실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냥 있으면 사는거고, 좋으면 사는거지...이렇게 되면 상관이 없지만, 이게 어느 시점 이상이 되어버리니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생산성을 낮추는 불로소득의 관점으로.


저금리 시대와 더불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돈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명품 소비와 과시욕이 대단히 늘었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이런 과시욕이 대단히 크게 작용했는데, 2000년 이후로 한국 사회는 유난히 외제차, 명품 등에 열광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명품 구입을 위해 오픈런을 하는 모습 (출처: 헤럴드경제)

그러다가 이런 베블런 효과는 이런 사치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바로 투자재에도 같은 이론이 더해진 것이다. 주식에서 일단 우선적으로 드러나기도 했지만, 대표적으로 부동산의 경우 2000년대 후반, 그리고 2010년대 후반의 부동산 폭등에서 점차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왜 굳이 이렇게 부동산, 아파트가 이런 취급을 받았는가 하면 무엇보다 내가 산 주식은 보여줄 수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남에게 보여주는 게 가능(과시)하니까. 물론 주식도 있겠지만 사용 가능한 땅이 적고 인프라가 몰려있는 한국에서는 이런 땅따먹기 제로섬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에 더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결국 다들 게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이젠 투자재가 사치재의 역할까지 되자, 이제는 아파트마저 과시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쓸데없는 질문으로 어디 사세요? + 자가신가요? 전세인가요? 라는 질문까지 하는 이상한 풍조까지 생겨났다. 그 와중에 다른 누군가의 동네나 단지를 깎아내리는 추태까지!!



함정을 잘 보자

이렇게 남들 따라서 부동산이고 주식이고 발끈성으로 일단 샀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게 사실 과시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실물자산이니깐. 


그러나 이렇게 발끈성 투자, 소비에는 함정이 있다. 경기는 늘 발산과 수렴을 반복하지만 모두의 소문만 듣고 샀을때는 발산이 최고조이거나 수렴의 시작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바로 남들 소문에 이끌려 가다가 그 광풍에 날아가버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뭘 사서 부자가 되었다더라, 옆집 현서맘은 자가로 어쩌구저쩌구 이러쿵저러쿵 샀다더라...이렇게 하면서 계속 영끌(!)의 필요성을 강요한다.


여기 사람 있어요...


하지만, 뭐든지 그렇듯이 무한정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누군가는 피해를 보거나, 오랜 기간 고통을 겪어야 한다. 물론 제법 괜찮은 유지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버틸 수 있겠지만, 그것도 오랜 기간 버티기 어려운 부분이고, 심지어 여력이 되지 않음에도 팔랑귀 + 발끈러시로 투자했다면 정말 지옥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투자는 자본주의의 꽃이자 미덕이다. 사실 현대 사회는 투자와 흐름 없이 살아가기 어렵고, 현재처럼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시기에는 이런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흐름에 대해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람에 휩쓸려, 그냥 남들이 다 하니까, 창피해서 이런 이유만으로 투자하는 것은 무조건 말리고 싶다. 그렇기 위해서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 상시로 경제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부지런해져야 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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