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소리내어 말하는 건 무서운 일이다. 혼자서 정리하지 못하고 결국 표현하게 되는 것도. 덮어두었던 감정을 말하고 나면 그게 진짜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겁이 난다. 겁쟁이로 사는 게 싫다기 보다는 동정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좋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것만 보고 싶은 이상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타인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사용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말을 자꾸 안으로 삼킨다. 다들 나름의 어려움을 안고 지낸다는 걸 아니까.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도 힘들고 지친다는 것도.
가장 이해받고 싶었던 사람에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라는 답을 들었던 경험은 아직도 나를 자주 주눅들게 하고, 타인이 기대한 것과 다른 모습인 나는 자주 숨고 싶어진다. 내가 어쩔 수 없었던 이유로 받은 상처마저 내 탓 같은 날이다. 상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니 나는 자꾸만 내 어두운 면에 답이 있지 않을까 의심한다. 이유를 알 수 없을 땐 나의 치부를 들춰본다.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독이다. 사람은 흐르는 물처럼 정직한 존재가 아니다. 나를 오래 마주하다 보면 문제의 원인을 함께 만든 타인은 희미해지고 어느새 나만 탓하고 있다. 스스로를 적당히 봐주지 않으면 남들이 알지도 못하는 나의 모난 점까지 미움 받는 기분이 든다.
이 감정도 언젠가 이겨내든 천천히 사라지든 할 텐데 위로 받고 싶어도 참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잘 지내자는 다짐과 눈물이 다툰다. 내일 일어나면 문득 아무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친구는 내가 삼 개월 전쯤 보낸 메일을 자주 들여다 본다고 했다. 오늘도 열어봤었다며 나에게 메일을 돌려보냈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빤하게 보고 있나. 아님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나. 감정은 늘 그 자리에서 맴도는 걸까. 내가 건넨 위로가 나를 끌어안는다. 위로는 돌고 돌아 나를 감싼다. 가끔은 타인의 슬픔에 질식할 것만 같았던 경험도 나의 슬픔을 감추게 한다. 누군가 나의 슬픔에 깊이 빠질까봐. 또 다른 상처가 될까봐. 다만 꾸준히 타인의 슬픔에 닿아 나누었던 기억이 오늘 나의 슬픔을 희미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이것만으로 잠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