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조각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자 Jan 21. 2022

변변찮은 삶을 위한 변명

에디터 일기

<변변찮은 삶을 위한 변명>을 제작하며.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내 글을 쓴다는 건 다소 불편한 사정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책을 작업하고 있노라면 지금 남의 글 만질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고, 책을 만드는 일과 책을 파는 일을 두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건 영 껄끄러운 일이다.

 

오늘은 웜그레이앤블루에서 작업한 올해 첫 책, <변변찮은 삶을 위한 변명>에 대한 이야기.


곤란한 사정

을지로에서 서점을 하던 2020년에 계약했으니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다. 학준님 원고를 받기로 했다고 동업자에게 통보 받고 고민이 좀 됐다. 이미 본인이 계약금까지 드렸다는데 무를 수도 없고, 상의 없이 결정된 일이었지만 결국 원고를 편집하는 건 내 일이었고,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한숨을 쉬었다.


원고 작업

초고를 받았을 때는 혼란스러웠다. 분량도 내용을 이해하기에 너무 적었고, 좋게 읽었던 그의 전작과 문체도 달라져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였다. 시간을 좀 둔 뒤에 다시 한 번 읽고 피드백을 보냈다. 지금 이대로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설명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러 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당신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더 말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물었다. 마치 드라마 <하우스>에서 닥터 하우스가 늘 무언가를 숨기는 환자들에게 이걸론 당신을 살리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비밀을 캐내는 것처럼. 단편의 글 사이에 편집되고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야했다.

<변변찮은 삶을 위한 변명>은 도시를 옮겨다닌 그의 삶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 책이다. '변명'담이기에 논리와 흐름에 작은 비약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왜'와 '어떻게'를 수차례 반복하며 헐거운 짜임이 조금씩 촘촘해졌다. 학준님 말대로 글은 처음부터 거의 완성‘형’이었는데, 우리는 그 방향을 더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을뿐이다.

작업은 어느새 일 년을 훌쩍 넘어갔고 아마 그동안 그는 글을 고치다가 한숨을 쉬고, 다시 일을 알아보고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일 년이 지난 뒤에는 학준님과 계약을 했던 현경이 친구로서 그의 원고를 함께 읽고 피드백을 주고 받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문답으로 작은 연결지점들까지 수정해준 조금은 도톰해진 원고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다 읽고 나니 만족을 숨이 내쉬었다. 단숨에 읽히는 책이다.


제목 짓기: 그가 진짜 하려는 말의 본질

학준님이 원고와 함께 가져왔던 제목은 <내가 그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책 내용은 작가가 내민 제목과 다르지 않았으니 적당히 요약된 문장이지만, 생전 안면도 없는 누군가 어떤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아무래도 상상력이 잘 닿지 않았다. 책 내용을 잘 반영한 것은 맞는데, 일기처럼 느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 '나'를 제거해야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가 일본/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책 제목을 쓴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그의 행보를 떠올리며(우리는 그에 대해 이미 많이 안다!) 그의 문학적 삶에 흥미진진함을 느끼겠지만 우리의 경우엔 분명히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없었다. 첫인상이 자의식 과잉의 불행한 단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변찮은 삶을 위한 변명>이 학준님이 원했던 제목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는 표현만 달라졌지 같은 말을 썼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 단어로 생각했다. ‘변명’. 그는 도시를 떠나야 했는데, 이 책은 그 이유를 본인 입장에서 변명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작가는 그 도시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변명하고, 그건 늘 그곳에서 변변찮았던 본인의 모습 때문이다. 이제 그는 이 책에서 '산다는 것의 변명'을 본격적으로 늘어놓는다. 우리는 타인의 변명을 싫어하지만 글쎄, 그게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면?

그가 하려는 말의 본질을 우리 일반에게 가져와 적용한다. 그가 도시를 떠나야 했던 이유는 우리 삶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자리를 옮겨가며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기를 그토록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동을 설명하기 위해, 합리화 하기 위해 말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표지: 그 도시에 흘린 부스러기를 주으며 걷다.

처음 받은 표지 디자인은 카모플라쥬 무늬 같은 색상의 물결이 층층이 쌓인 것이었다. 현경은 각 도시에서의 시간이 층층이 쌓인 것이라고 해석했다는데, 아무래도 평면의 표지에서 퇴적의 느낌을 얻기는 어려웠고, 카모플라쥬 답게 어디에서도 은폐엄폐 할 것만 같아 의미와는 별개로 재고해야했다. (개인적으로) 패턴보다는 도형을 사용한 디자인이 좋다는 의견을 전하고 지금의 표지를 받았다. (쨘!)

책 표지의 그래픽은 네 도시에 점을 찍고 이동 경로를 점선으로 이은 것이다. 의미도 그렇지만 미적으로도 나는 그 표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학준님도 그렇다고 해서 바로 결정이 났다. 게다가 내용을 충실히 요약했던 학준님의 첫 제목 <내가 그 도시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그래픽과 '변변찮은 삶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조화롭게 대변할 수 있다고 느꼈다.


맺으며,

어쩌면 내가 원해서 시작한 작업보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일이 순탄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지와 반해서 시작한 일에는 늘 많은 변명이 필요한 법이다. 아니 어쩌면 해야해서 했다고 말해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에게 그런 일은 없다. 잘해야 하고 잘할 수 없는 경우에는 몇 배의 힘이 든다.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몇 배의 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역시 몇 번쯤 환경을 탓해도, 나 스스로 잘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만의 방이 아닌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