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기술과 젠더와 나
나와 집
나는 초등학교 때 작은 방 두 개가 붙어 있는 가겟집에서 3~4년 정도 살았다. 우리집에는 자식이 넷이나 되었지만 적절한 시기에 순서대로 도시로 유학을 떠났기에 집에 사는 사람은 엄마, 아빠, 나 정도였다. 나 역시 중학교 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갔고 친척집, 자취집, 하숙집의 방을 옮겨다니며 혼자 또는 언니와 살았다. 서른이 넘을 때까지 먹고 입는 것부터 집을 구해서 이사하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챙기는 것까지 여전히 부모와 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언니는 살림을 하고 집주인을 상대하고, 동생도 챙기고, 집에 생기는 자잘한 고장을 처리하면서 살았다. 다행히 우리가 놀고 자랐던 가겟집이 전파상이었기 때문에 펜치나 망치를 잡는 일이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나의 집
나는 2015년에 전북 완주군으로 귀촌했다. 처음으로 1인 가구로 독립했다. 어떤 집을 구해서 살아야 할지, 이사는 어떻게 하는 건지 막막했지만 다행히 주변엔 나보다 먼저 독립가구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어서 두려움을 감추며 나아갈 수 있었다.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구했다. 집에 필요한 책상이나 식탁, 의자도 천천히 조금씩 내맘대로 직접 만들었다. 귀촌해서 내가 다니던 회사가 적정기술을 교육하고 보급하던 단체여서 각종 공구와 남은 자재를 얻어 쓸 수 있었다.
나와 기술
자급을 꿈꾸며 시골로 내려갔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일하면서 (많지도 않은) 돈을 벌고 그 돈을 쓰러진 몸을 일으키는 데 다시 쓰는 (그래서 결국 돈도 없고 건강도 잃고 마는) 생활에 지쳐 있었다. 적게 벌어도 적게 쓰면서 내가 원하는 속도와 방향대로 살고자 했다. 적정기술은 그런 나에게 적합한 도구 같았다. 게을러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산에서 나는 나물을 채취하면서 먹고 살고자 산나물 캐는 산 속 명상공동체에도 가 보고, 자급자족의 끝판왕 같던 집짓기 현장에도 갔다가 몸과 마음을 차례로 다친 뒤였다. 고정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숙식이 제공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니거나 무료 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소비 규모를 완전히 줄였기 때문에 (이런 삶은 그 나름의 불안과 불만이 커서 아직까지도 직장인과 프리랜서, 여행자와 생활인의 경계를 오가며 산다)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 그것도 오랫동안 배우고 익혀야 하는 어려운 하이엔드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적정기술을 장착하면 내가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질 것 같았다.
내가 기대했던 적정기술은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생활의 불편함을 없애고 필요에 맞게 딱 그만큼만 문제를 해결해오던 방식이었다. 밥상이 필요하면 라면 상자를 뒤집어 밥상으로 쓰고, 집에 우풍이 너무 심해 추우면 돌을 데워서 손난로로 사용하고, 뜨거운 물이 담긴 주머니를 안고 잤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돌이나 물의 온기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기를, 어렵지 않게 밥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중년의 귀농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조직이었고, 찾는 이들도 비슷한 나이대의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은퇴하고 귀농한 중년 남성들. 당장 그런 귀농인들이 원하는,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주로 실시되었다. 흙이나 벽돌로 구들을 놓고 용접해서 화덕이나 난로를 만들었다. 단열 공사나 집 짓기, 창고 짓기에는 목공이 기본이었다. 이전까지 내가 속한 세계에서 만나지 못했던 많은 중년 남성을 만났다. 상사부터 직장동료, 교육생, 동네 사람들. 불편하고 피곤하고 불쾌한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여자들이 있어야 술맛이 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내가 원하는 도움 혹은 가르침만 담백하게 주고 떠나는 강사가 필요했다. 초보자들을 편견 없이 기다려주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여성들에게 쓸 데 없는 헛소리를 하지 않는 강사와 교육의 경험이 절실했다. 이런 걸 배워서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해달라고 해라, 라는 식의 직접적인 차별은 별로 없다.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거나 실력이 나은 사람이 수업의 지분을 대부분 차지하면서 초보자나 미숙련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점, 여자치고 잘한다, 여자인데도 잘한다, 여자라서 못한다 등 동등한 주체로 여기지 않는 점들이 문제였다.
여성과 기술
기술교육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다른 나라의 현장은 다를까, 차별과 다양성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고민해온 곳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회사의 모델이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대안기술센터(CAT. Center for Alternative Technology)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다녀왔다. 특별한 비법이나 규정이 따로 있다면 그대로 배워와서 적용하고 싶었다. ‘성차별을 하지 말자’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정은 따로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우리네 현장과 다른 점을 찾아보았다. 안전규정과 약속 등 기본에 충실할 것, 강사는 실력으로 권위를 가지되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관리할 것, 뒤처지는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 소수의 인원으로 진행할 것, 무리하지 않을 것 등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기록했다.
80년대 초창기에 여성 빌더로 일하다 은퇴한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의 우리네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별 격차를 줄이고 성비를 맞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성을 우대하여 채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은 경쟁 시장에서는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게 공정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체력이 약하고, 실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 않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세상에 ‘신체 건강하고 체력이 강한 남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쎈 것도 아니므로 첫 번째 질문에는 길게 답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설사 남녀의 체력차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내용이 있다손 치더라도 두 번째 질문이 훨씬 중요하다.
여성은 왜 기술적으로 남성보다 부족한가. 혹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가. 전통적으로 기술이 남성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바깥 일, 힘쓰는 일, 그래서 위험한 일, 그래서 중요한 일. 중요해서 남성의 일이 되었는지, 남성이 하니까 중요한 일이 되었는지 순서도 애매하다. 자동차 정비 기술자도, 집 짓는 목수도, 전기 기술자도, 설비 기술자도 대부분 남성이다. 남성의 일로 보고 듣고 자란다. 남성의 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여성은 스스로 내가 할 일이 아니라 다른 남성을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일이 흥미를 느낀 어린 여자 아이는 여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본인의 적성과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잃는다. 성인이 된 여성이 뒤늦게 필요에 의해 (여성 고객은 남성 수리기사와의 대면이 불쾌하고 불편하고 위험한 경우도 많다) 기술을 접하고 싶어지면 위에 말한 것처럼 교실의 홍일점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위험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들까지도 전혀 엄두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전등의 전구를 가는 일, 나무에 못을 박는 일이, 세면대의 배관을 분해하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당연히 처음에는 손에 익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기를 다루거나 날카로운 공구를 사용할 때는 다칠 위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엄두를 내볼 수도 없게 살아온 세월이 아깝다. 이 재밌는 걸 자기들끼리만 했단 말이야? 별로 어렵지도 않은 걸 가지고 그렇게 생색냈단 말이야?
집돌봄과 젠더
영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여성들만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장 써 먹을 수 있거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생활기술’이라는 이름 붙였다. 내 주변에서, 내 생활 속에서, 오늘도 이용했고 문제가 생기면 당장 해결해야 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전기와 배관의 원리 이해, 목공작업을 통한 공구 실습이었다. 집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주로 다뤘다. 원리를 알면 해결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다. 방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때, 세면대나 씽크대가 막혔을 때, 찬장이나 옷장의 문이 삐걱거리고 잘 닫히지 않을 때, 화장실 환풍기가 돌아가지 않을 때…….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자체를 말하기도 하고, 그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천장에 구멍이 나서 비가 시면 그 구멍을 막는 게 문제 해결력이고 기술이지만 키가 작아서 그 구멍에 닿을 수는 없을지라도 그 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도 중요하다. 집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나보다 꼭 키가 더 크고, 더 힘이 세고, 집안에서 중요한 일을 도맡아서 해온 특정인이 아니라 나일수도 있다는 감각, 그게 나여도 된다는 확신이 중요하다. 나는 문제를 발견했고 해결방법을 안다. 사다리에 올라가는 게 두렵지 않다면 직접 구멍을 막아볼 수도 있다.
집에서 사는 사람, 집을 이용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집을 돌보는 사람이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집을 돌보는 일이고 장판이 찢어져 장판을 메꿔야 하는 일도 집을 돌보는 일이다. 청소를 특별히 더 잘하는 사람, 손재주가 더 좋은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성별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의 적성과 능력과 취향을 편견과 고정관념 때문에 지나쳐왔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확장과 지속성
집에 가구라곤 아무것도 없고 친구가 빌려준 밥상 하나만 있을 때 책상도 필요하고 책장도 필요했지만 제일 먼저 팔레트로 신발장을 만들었다. (얻어 쓸 수 있는 목재가 팔레트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혹은 참견)을 받으며 만들었고 지금은 캣타워로 쓰고 있다. 직접 한번 해보고 나면 다음번엔 더 많은 상상과 노력을 할 수 있다. 신발장을 만들 때는 대충 자르고 대충 못을 박아서 고정만 시켰지만, 책상을 만들 때는 상판을 더 정교하게 자르고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대를 어디에 더 추가할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본다. 이제 나는 한 개의 가구를 만들어본 경력자이기 때문에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여전하다면) 두 번째 가구는 더 잘 만들 수 있다. 한번 해보고 나니 아이고 내 적성이 이것은 아닌가보다 나는 돈을 들여서 잘 만들어진 것을 사서 쓰겠다 하면 사서 쓰면 된다. 내가 직접 만든 게 너무 허술해서 아무래도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그리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채도 좋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원리를 알게 되면 직접 만들지 않아도 나중에 다리가 흔들거릴 때 어디를 어떻게 조여야 안정감이 생기는지 알기 쉽다.
나는 돈을 아끼고 살고도 싶고 직접 내게 딱 필요한 그 크기의, 그 기능의 물건이 필요해서 많이도 만들었다. 책상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고, 이불장도 만들었다. (당연히 판매하는 제품의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친다) 나중에 책장과 소파는 기성품을 샀다. 처음에는 선반으로 만들었던 걸 쓸모가 다한 뒤에 이리저리 궁리해서 고양이가 올라가 쉴 수 있는 의자로 쓰고 필요 없는 탁자는 다시 분해해뒀다. 언젠가 무언가 또 필요하다고 느끼는 날 이리저리 조합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까. 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막막해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지, 궁리를 시작한다. 정답은 없다. 종이를 연결할 때 테이프로 붙일까, 풀로 붙일까, 스테이플러로 박을까 방법을 결정하는 것처럼 나에게 필요한 기능과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방법을 찾아낸다. 나의 기술은 이렇게 더 확장된다.
여기, 그 기술의 첫걸음을 떼기에 적절한 곳이 있다. 초보자를 배제하지 않고 누구도 차별받거나 대상화시키지 않는 현장을 꾸리면서 자기도 몰랐던 기술의 씨앗을 발굴해내는 아름다운 현장. 자라난 새싹을 소중히 서로 가꾸며 돌보는 우정과 협력의 공동 경작. 여기공은 나와 우리들에게 놀랍고 즐거운 경험을 선사했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2020년 11월 17일 <집과 젠더 : 집돌봄의 기술> AS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