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반찬 모임

by badac


“다음 달엔 장조림 어때요?”

“(새우 피자를 먹으며) 비건 지향이라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저도 괜찮아요”

“그럼 고기는 넣지 말고 꽈리고추랑 메추리알 간장 볶음으로 만듭시다.”


반찬 모임을 시작했다. 마음 붙일 다정한 동네 모임이 필요했는데, 너무 거창하게 작정할수록 자리를 만드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부담스럽다는 걸 과거의 경험을 통해 확인했다. 자연스러운 게 좋지, 있어도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것으로 시작하자. 여러 번 만나야 친해질 텐데 친해질 목적으로 밥만 먹는 자리는 나조차도 영 내키지 않는다.


연고 없는 동네로 막 이사 왔을 때 버스 정류장이나 마트의 위치, 가까운 거리의 맛있는 빵집,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줄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나 갈 곳 없는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관심 없는 거 말고 지금 내가 고민하는 일과 인간관계와 여기의 생활을 시시콜콜 이야기할 수 있는 편한 친구가 몇 명쯤 더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편히 만나고 있는 단 한 명의 동네 친구와 드디어 ‘1인 가구 반찬 모임’을 결성했다. 마음 편한 관계가 될 때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하지만 날마다 먹는 반찬은 어지간하면 있으면 좋으니까 함께 만나서 반찬을 만들고 밥 한 끼 같이 먹기로 했다.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함께 하면 낯을 가리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은 자리가 될 테고, 대화가 즐겁지 않은 사람에게도 협동의 경험과 반찬은 남는다.


피클준비.jpg


누구와 함께 하면 좋을까,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일단은 준비하는 우리가 버겁거나 일로 느끼지 않을까. 우리 외에 한두 사람만 초대하자. 내 집보다 조금 더 넓은 친구의 집에서, 우리가 가진 조리도구를 이용해서, 우리가 막 왔을 때 환대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정한 마음을 먼저 내어보자, 그러면서 우리도 더 즐거워지자. 친구와 나의 마음은 같았다. 그렇게 지난 달과 어제까지 두 번 모였다. 기대보다 훨씬 좋다. 얼굴이나 이름만 알던 사이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말만 하면 지겨워질 때쯤 양파도 다듬고 오이도 썬다. 설거지를 하면서 근황을 묻고 점심을 든든히 먹은 뒤 만든 음식을 들고 돌아간다. 뿌듯하다. 어제는 수박도 같이 사서 나눠 먹었다. (1인 가구는 수박을 사먹기 어렵다)


첫 모임에는 나와 친구가 일방적으로 카레와 감자볶음, 감자 샐러드로 메뉴를 정했었다. 두 번째 모임 때는 내가 먹고 싶어서 양파 피클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어제는 자연스럽게 함께 밥을 먹다가 다음 달 메뉴가 정해졌다. 꽈리고추 볶음과 도라지와 죽순 초무침이다. 와, 도라지나 죽순으로는 반찬을 만들어본 적 없는데 여럿이 모이면 그들의 과거와 경험도 함께 모이니 내가 모르는 세계도 만나게 된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동네의 든든한 지지그룹을 만들고야 말겠어, 라는 큰 기대와 욕심은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과욕은 실패를 부른다. 그저 자연스럽게 모임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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