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평소처럼 많이 먹고는 있지만) 먹기 직전까지 왠지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아' '입맛이 없네' 등등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어리둥절하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도시락통에 싸두었던 밥을 반만(!!) 덜어 먹을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 그랬다는 거다. 계획이)
며칠전 끓여놓은 미역국이 5끼니 정도 나오는 분량인데, 점심 저녁은 도시락으로 싸가서 같은 거 먹고 아침만 조금 다른 거 집에서 먹으면 되겠다. 뭐 하루종일 같은 거 먹어도 별로 안 지겹더만..(이라고 생각했었었었었다...)
근데. 지겹더라고. 나는야 먹는 데 진심인 사람이니까.
그래서 저녁은 삼분카레를 먹을 생각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은 너무 ... 뭐랄까...맛이 심심해..자극적인 제품 맛으로 균형을 맞춰야 했다. 그래서 라면 먹고, 제품 스파게티 소스 먹고, 새우깡에 핫소스 뿌려 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먹고, 먹고, 먹고....
여튼, 그래서 밥 반공기를 넓은 그릇에 덜고, 삼분카레를 열심히 물에 끓여 데웠다.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다. 그날은 일찍 집에 와서 저녁을 집에서 먹었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어라, 나에게는 두부텐더가 있지. 카레집에서 별도 구매 토핑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두부텐더 좀 구워서 올려야겠다, 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한두개로 될 리가..5~6개 정도를 구웠다. 그리고 밥+카레+두부텐더+채소샐러드 이렇게 야무진 한 상을 먹었다. 역시 강렬한 재품의 맛. 기분이 좋고, 몹시 배가 불렀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이정도는 이겨내야지!
채식 지향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이후 장볼 때 우유, 달걀, 고기를 사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엄격하게 지키지는 못하고, 친구들과 고깃집에 가기도 하고, 혼자 돈까스를 시켜 먹기도 했다) 고기맛과 거의 비슷하다는 대체육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생명 경시와 동물 착취에 대한 죄책감, 기후 환경에 대한 위기감,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지만, 욕망을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하지 못하면서 먹는 걸로 해결하려고 하는 안일한 태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나는 너무 식탐이 강하다고 느꼈다.
먹는 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가 나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뭔가...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닌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고, 그 순간의 경험을 귀하게 생각하는 그런....감정보다는 그냥..뭔가 허전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게 좀 싫었달까. 나는 잘 챙겨먹고, 나에게 좋은 걸 먹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먹는 데 진심'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게 했다.
'자연식물식' 책을 보면서는 그래 채식 + 건강식 + 수행으로서의 식사습관 재정비에 이것만큼 딱인게 없겠구만. 답을 찾은 것만 같아서 거기서 말하는 것처럼 튀김이나 볶음요리도 멀리하고, 국물도 멀리하고, 백미도 멀리하는 식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창의적으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데쳐먹거나 삶아먹거나 구워먹고, 국이나 찌게를 끓여 건더기 위주로 먹었다. 그런데...솔직히... 질린다구..
길게 오래 계속하려면 뭐든 너무 극단적이거나, 힘들지 않게 타협하면서 가야한다. 당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방법과 행동으로. 튀김 절대 먹지 말아야지, 고기도 절대 먹지 말아야지, 커피도 절대 마시지 말아야지. '절대'가 들어간 다짐을 너무 많이 자주 한다. 다신 절대 그런 다짐을 하지 말아야지...아니아니 이게 아니고.
마음 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지키는 건 쉽지 않아, 당연히.
그런 나를 너무 가혹하게 뭐라하지마, 과자 먹고 라면 먹으면서 또 이렇게 약속을 어겼네, 라고 자책하지 말자. 상황에 맞게 조절하면서 바꾸기도 하고 봐주기도 하면서 살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어쨌든 나으니까.
두부텐터 진짜 맛있구만. 하하하하.
비온 뒤 촉촉한 공기 사이에서 드르륵 손으로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를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커피를 줄이겠다고 다짐한 뒤로 거의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는데 (그러면서 초콜렛은 많이 먹고, 먹고 눕기도 많이 하고, 응??) (아니아니, 또또 이렇게 판단하고 혼낼 일이야?) 가끔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조절하면서. 다른 일과 음식과 균형을 맞추기도 하면서.
'절대' 라는 말은 참 위험하고 무모한 것 같아.
이거 아니면 저거 라는 흑백논리와도 닿아 있지.
자신한테 너무 팍팍하게 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