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먹는 밥, 남이 차려준 밥, 내가 한 밥

채식지향인의 갈등

by badac

월요일 아침에 급하게 연락을 받고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다음날 늦게 돌아왔다. 소고기 육개장, 편육, 동그랑땡 따위의 육고기를 내내 먹었다. 강력하게 채식 실천을 하는 친구는 고기 성분을 피해 식사를 했지만 그러기에 나의 다짐은 작고 약하다. 눈앞에 있는 육식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일요일 점심부터 수요일인 오늘까지 내리 육식이다. 이사한 친구 집에 초대받아 점심으로 찜닭을 먹었고, 저녁엔 할인 판매하는 햄버거를 사 먹었다.

버거킹에서 채식버거(플랜트버거)를 먹었지만 1+1 행사중인 와퍼도 사왔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어젯밤엔 컵라면을 먹었다. 장거리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땐 맵고 짠 라면을 먹어야 기운이 난다. 채식 라면이나 페스코를 위한 멸치 칼국수로는 성이 안 찬다. 오늘은 업무 회의에 갔다가 점심으로 새우 간장 파스타를 얻어 먹었다.


일요일 점심 초대를 받을 때 메뉴가 찜닭인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채식 지향으로 식생활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으면 메뉴를 바꿔주셨을까, 폐를 끼치는 거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고기를 먹고 싶기도 해서 내심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육식을 할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기만을, 친구가 고기를 먹자고 해주기만을 기대해버리고 말았다.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밤이면 휴대폰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이번 한번만 치킨을 시켜 먹을까 고민하면서 뒤척이는 밤을 이미 여러번 겨우 지나갔던 터다.


장을 볼 때 육류와 어패류, 유제품과 달걀을 사지 않은 지는 석 달 정도 되었다. 하루아침에 완벽하고 철저하게 100%의 비건 채식인이 되기는 어려우니 젓갈을 넣은 엄마표 김치도 먹고, 회의 자리에서 간식으로 제공되는 햄치즈 샌드위치도 있으면 먹는다. 오늘처럼 미리 메뉴를 묻지 않고 음식이 나온 자리에서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일요일의 닭고기는 맛있었는데 월요일의 소고기, 화요일의 돼지고기, 수요일의 해산물까지 연이어 먹고 나니 너무 많은 고기를 먹은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도 전처럼 직접 고기를 사다 구워 먹고, 별 저항 없이 치킨을 시켜먹지는 않으니 많이 달라졌다.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있다. 완벽하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100% 나쁜것 보다는 0.00001%라도 덜 나쁜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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